가치주가 다시 성장주로

가치주가 다시 성장주로

미 중앙은행(Fed)의 자산이 지난 11일자로 4조478억달러까지 치솟은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세 차례의 양적완화(QE)로 2015년 초 4조5000억달러에 달했던 Fed의 자산은 양적긴축(QT)로 지난 8월26일 3조7599억달러까지 떨어졌었습니다.
그런데 석달도 안돼 무려 2879억달러나 급증한 겁니다. 이는 칠레의 연간 국내총생산(GDP)보다 더 많은 돈입니다.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예상보다 빨리 대차대조표 확대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 시장 상황을 살펴 적정 시기를 저울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 뒤 Fed는 지난 10월부터 월 600억달러를 투입해 단기 국채를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Fed는 이런 자산매입이 내년 2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Fed는 당시 단기 자금시장 안정을 위한 차원이며, 경기 부양을 위한 양적완화(QE)와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QE 1~3처럼 장기 국채를 매입해 금리를 떨어뜨리려는 의도가 아닌 만큼 단기 채권만을 매입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급증하는 Fed의 자산2

급증하는 Fed의 자산2

하지만 그 효과는 과거 QE 1~3와 비슷하게 시장을 부양하고 있습니다.
벌써 시장엔 2879억달러란 돈이 풀렸습니다. 레포 시장의 발작이 나타난 지난 9월부터 레포 시장을 통해 돈을 찍어내고 있고, 특히 지난 10월 자산매입을 개시한 뒤 6주 동안 과거 QE 1~3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채권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월가에서는 Fed의 유동성 공급이 기존 QE 정책과 비슷하게 미 증시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모건스탠리의 리사 셸럿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 “양적완화와 최근 부양책은 완전히 비슷하다. 금융여건은 매우 느슨하고 완화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골드만삭스의 금융여건지수는 현재 올들어 가장 좋은 상황입니다.
캡처

캡처

Fed가 금융사들이 가진 채권을 사주면 그 돈은 금융사로 갑니다. 금융사들은 그 돈을 그냥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굴립니다. 빌려주던, 아니면 다시 투자하던 합니다. 그래야 돈을 버니까요. 결국은 금융시장엔 훈풍이 불 수 밖에 없습니다.

뉴욕 증시에서는 지난 몇 달간 가치주가 각광받으면서 성장주보다 수익률에서 앞서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S&P 500 밸류 지수는 지난 3 개월간 12% 상승해 성장주에 비해 두 배 이상 올랐습니다.
상승장 막판의 순환매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통화정책의 끝이 보이는 상황에서 재정정책의 영향을 받는 주식으로 넘어간 것이란 관측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달 들어 다시 성장주, 경기순환주가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신고가 기록을 세우는 등 다시 밸류 주식에서 모멘텀 주식으로 시장 관심이 이동한 것입니다.
뉴욕 증시 전망을 바꾼 모건스탠리

뉴욕 증시 전망을 바꾼 모건스탠리

월가의 한 트레이더는 “성장주는 기술주 등 글로벌 통화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고 가치주는 제약, 건설, 중소 금융사 등 내수주 중심이어서 재정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 8~10월 기준금리가 세번 인하되고 나면 더 이상 통화정책에 기대할 게 없다는 관측이 밸류 주식을 끌어올렸는데, 최근엔 미중 무역협상의 영향과 함께 통화정책 즉 QE에 대한 기대가 다시 커져 성장주가 다시 힘을 얻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QE의 힘은 대단합니다. 과거 Fed가 QE를 실시할 동안 증시는 하락한 적이 없습니다.
이는 지난 1년 이상 약세장 전환을 주장해온 모건스탠리가 타월을 던지게 만들었습니다.
모건스탠리는 18일(현지시간) S&P500 지수의 내년말 전망치를 기존 2750에서 3000으로 높였습니다. S&P500이 현재 3122까지 오른 상황에서 2750은 비정상적 시나리오라고 본 겁니다.

모건스탠리는 또 가장 나쁜 시나리오일 때 2400, 가장 좋으면 3000이라고 전망했었는데, 이를 2750~3250으로 수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불안한 지 지수가 3250을 넘을 수도 있다는 사족을 달았습니다.
“올해 성장 속도가 작년보다 크게 둔화됐지만 Fed가 자산 가격을 계속 부추겼다. Fed가 계속 대차대조표를 월 600억달러 수준으로 확대할 경우 S&P 500 지수는 연말 3250을 넘어 설 수도 있다”고 밝힌 겁니다. 즉 자신의 예상이 틀린 건 Fed 탓으로 돌린 것입니다.

Fed의 힘은 이날 뉴욕증시에서도 확인됐습니다.
이날 아침 CNBC가 중국발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관세 철회에 대해 'No'라고 밝힌 뒤 중국 정부는 무역합의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해 오전장 시장은 마이너스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의장과 오늘 만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상승세로 전환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의장이 회동한 건 지난 2월 백악관 만찬 회동 이후로는 처음입니다.
Fed의 자산매입이 재개된 뒤 계속 올라가는 뉴욕 증시

Fed의 자산매입이 재개된 뒤 계속 올라가는 뉴욕 증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방금 파월 의장과 매우 화기애애하고 좋은 만남을 마쳤다. 금리와 마이너스 금리, 낮은 인플레이션, 통화 완화, 달러화 강세와 그로 인한 제조업 파급 효과와 중국·유럽연합(EU) 등과의 무역까지 모든 것을 논의했다”고 밝혔습니다.
Fed는 성명을 통해 “파월 의장이 경제와 성장, 고용과 인플레이션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주 의회에서 한 언급과 부합하는 발언을 했다”고 약간 다른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벌써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까지 계속 금리를 올렸던 파월 의장은 올들어 금리를 세차례나 낮추고 실질적인 QE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걸 다 들어주고 있는 것이죠. 월가에선 “파월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약점이 잡힌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이날 만남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협상이 안될 것에 대비해 혹시 보험을 든 것이 아닌가’하는 추정도 나왔습니다.
Fed는 내년 2분기까지는 ‘QE가 아니다’라고 한 자산매입을 계속 실시합니다. 그 동안 증시는 돈의 힘을 바탕으로 계속 꿈틀댈 것이란 관측이 많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뉴욕=김현석 특파원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