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코스닥시장의 허술한 ‘5% 룰’(주식 대량보유 보고 제도)이 도마에 올랐다. 증권사들이 헤지펀드와 파생계약을 맺고 코스닥 기업 전환사채(CB)를 대신 인수하고도 이 같은 사실을 전혀 공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5% 룰 허점이 헤지펀드의 편법 CB 거래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5% 룰은 투자자가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거나 보유 비율이 1% 이상 변동된 경우 5일 이내 보고(공시)하도록 하는 제도다.

실소유주는 라임운용인데 증권사가 보유 공시…CB 편법거래 부추긴 '5%룰'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라임운용이 투자한 리드 팍스넷 에스모 블러썸앰엔씨 슈펙스비앤피 등 8개사 지분을 각각 5% 이상(CB 포함 기준) 보유하고 있다. 주로 KB증권 신한금융투자 등이다. 해당 지분 공시만 보면 대형 증권사가 코스닥 기업에 투자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실상은 증권사는 이름만 빌려줬을 분 실제 투자한 곳은 헤지펀드다.

증권사는 헤지펀드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맺고 코스닥 기업에 투자한다. TRS는 매도자인 증권사가 주식·채권 등 기초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익과 손실 등 총수익을 매수자(자산운용사 등)에게 이전하고 수수료를 받는 일종의 장외파생거래다. 라임운용과 TRS 계약을 맺은 증권사의 파생상품 담당부서(델타원솔루션)가 자기자금으로 상장사 CB를 사주는 대신 주가 변동에 따른 이익·손실은 라임운용이 부담하는 구조다. TRS 거래를 증권사가 매수자에게 신용공여를 제공하는 사실상의 주식담보대출로 보는 것은 이런 특성에 근거한다.

그런데 증권사들이 금감원에 제출한 대량보유 공시서류 어디에도 라임운용과 관련된 대목은 눈에 띄지 않는다. 현행 규정상 증권사가 라임운용과의 TRS 계약 내용을 공시서류에 기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5% 룰 보고서 기재 내용은 보유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경영참여 목적인 경우 보유주식 등과 관련한 주요 계약 내용을 자세히 기재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 투자 목적이라면 계약 내용에 대한 기재 없이 대량 보유자 현황이나 취득·처분 일자 및 방법 등의 약식보고만 하면 된다.

한 금융투자회사 임원은 “라임운용은 증권사의 지분 공시에 회사명이 노출되지 않기를 원했다”며 “5% 룰의 허점을 파고들어 TRS로 실소유 사실을 숨긴 채 투자하는 것을 선호한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지난 10일부터 KB증권·신한금융투자와 라임운용 간 TRS 거래 검사에 착수한 것도 TRS가 공시의무 회피 등 방식으로 파킹거래와 같은 편법 행위에 악용됐는지 살펴보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 제도하에서는 단순 투자 목적의 대량보유 공시에 TRS 계약 여부를 명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제재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5% 룰 개선 여부는 라임운용과 증권사 간 TRS 거래 관련 검사 결과가 나오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 총수익스와프(TRS)

매도자(주로 증권사)가 주식·채권 등 기초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익과 손실 등 총수익을 매수자(자산운용사 등)에게 이전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장외파생거래의 일종.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