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0월 14일 오후 4시27분

비슷한 펀드를 쪼개 파는 일명 ‘시리즈 펀드’를 판매한 은행이 금융당국의 제재 도마에 처음으로 올랐다. 금융감독원이 첫 제재 대상에 오른 농협은행에 거액의 과징금을 통보했지만, 금융위원회 산하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자조심)에 이어 법령해석심의위원회에서도 위원 간 의견이 엇갈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농협은행의 징계 여부에 따라 시리즈 펀드 판매 의혹을 받고 있는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판매사 우리은행, KEB하나은행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마켓인사이트] '시리즈 펀드' 판매社 중징계 논란
14일 금융권과 금융감독당국에 따르면 금융위 산하 법률자문기구인 법령해석심의위원회는 지난주 농협은행의 ‘공모규제 회피’ 혐의에 대한 제재를 논의했지만 위원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금융권 관계자는 “펀드 판매사인 농협은행이 주선인이라는 데는 대다수 의견이 일치했지만, 주선인에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를 지워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유보적인 의견까지 감안하면 징계가 어렵다는 쪽에 다소 무게가 실렸다”고 전했다.

농협은행은 2016~2018년 파인아시아자산운용과 아람자산운용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펀드’ 방식으로 주문한 펀드를 사모로 쪼개 팔아 공모를 회피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5월 개정된 법 규정에 따르면 같은 증권을 두 개 이상으로 쪼개 발행할 경우 펀드당 투자자를 49인 이하로 설정했더라도 증권신고서 제출 등 공모펀드의 공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 미래에셋대우가 2016년 15개 특수목적법인(SPC)을 이용해 베트남 랜드마크72빌딩 관련 자산유동화증권(ABS) 상품을 771명에게 사모로 쪼개 팔아 문제를 일으키면서 개정된 내용이다.

지금껏 펀드 운용에 위법 사항이 발생하면 운용사를 징계해왔다. 파인아시아자산운용과 아람자산운용은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일부 영업정지 등 중징계를 받았다. 판매사인 은행에 펀드의 공모 회피 책임을 물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금감원은 농협은행이 시리즈 펀드를 설계·운용하는 과정에 개입해 연대책임이 있다며 과징금을 부과하는 안건을 지난달 자조심에 상정했다.

금융당국은 조만간 자조심을 다시 열어 농협은행의 공모 회피 혐의를 재논의할 계획이다. 법령해석심의위원회에서 의견이 갈렸지만 금감원은 농협은행에 과징금을 부과한 원안 그대로 상정할 계획이다. 파인아시아자산운용과 아람자산운용에는 같은 혐의로 각각 60억원, 4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농협은행은 금감원의 제재가 과도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판매사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한 사례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대규모 손실을 낸 해외 금리연계 DLF를 판매한 우리은행, KEB하나은행도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DLF 역시 ‘OEM펀드’와 함께 ‘시리즈펀드’ 의혹을 받고 있는 만큼 농협은행에 대한 징계가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은행의 제재 여부에 따라 DLF 판매사인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에 불완전판매 혐의 외에 공모규제 회피 혐의가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하수정/정지은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