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을 수출하라
해외 부동산 쓸어담는 한국IB

해외부동산펀드 50兆 돌파
해외 투자 영토 넓히는 한국IB
한국 투자회사들이 잇달아 건물을 매입하고 있는 프랑스 파리 오피스지구인 라데팡스.

한국 투자회사들이 잇달아 건물을 매입하고 있는 프랑스 파리 오피스지구인 라데팡스.

프랑스 파리 오피스지구인 라데팡스의 신(新)개선문 전망대에 올라 광장을 내려다보면 왼편에는 한국투자증권이 산 투어유럽빌딩과 하나금융투자가 인수한 CBX타워, 맞은편엔 미래에셋대우의 마중가타워가 눈에 들어온다. 투어유럽빌딩 뒤쪽으로는 NH투자증권이 매입한 투어에크호빌딩도 있다. 라데팡스 주변 빌딩들을 포함해 올 들어 국내 투자은행(IB)과 증권회사들이 사들인 파리 오피스 빌딩은 총액으로 6조원에 육박한다. 파리 부동산 투자 중개회사의 한 관계자는 “핵심 지구 알짜 빌딩을 한국 투자회사들이 경쟁적으로 가져가고 있어 현지 부동산시장에서 큰손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부동산시장 휩쓰는 K머니

미래에셋대우가 인수한 마중가타워.

미래에셋대우가 인수한 마중가타워.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에 설정된 해외 부동산펀드 순자산은 작년 말 39조6293억원에서 지난달 말 50조9770억원으로 9개월 만에 약 11조3000억원 불어났다. 부동산 거래의 60%는 현지 대출을 활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투자회사들이 올 들어 직접 자본을 투입해 인수한 해외 부동산은 20조원 규모를 훌쩍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 자본은 남유럽을 제외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전역의 오피스 빌딩을 쓸어담고 있다. KTB투자증권이 지난 5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3900억원 규모 티센터빌딩을, 하나금융투자가 1조3000억원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더스퀘어빌딩을 사는 등 초대형 빌딩 인수가 잇따르고 있다.

오피스뿐만이 아니다. 메리츠종금증권과 마스턴투자운용이 7월 빈의 힐튼호텔(약 5000억원)을, 이지스자산운용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의 아마존 물류센터(약 5500억원)를 각각 인수했다. 현지 언론에선 한국 IB들이 유럽 부동산 및 인프라 시장을 주무른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글로벌 부동산 중개기업 쿠시먼&웨이크필드 관계자는 “유럽 자산운용사와 시행사 등이 빌딩을 팔 때 한국 금융사들에 가장 먼저 입찰제안서를 보낼 정도”라고 말했다.

선진국 투자는 금융·외환시장 방파제

공항과 도로, 철도 등 해외 인프라 투자 자산 인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 올초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하나금융투자 등 한국 투자회사들은 영국 도시철도 테임즈링크에 철도차량을 빌려주는 크로스런던트레인(XLT)의 지분 33%를 인수(약 3100억원)했다. 투자를 주관한 영국 인프라 자산운용사 에퀴틱스의 지오프 잭슨 최고경영자(CEO)는 “유럽의 낡은 시설 개보수와 신재생에너지 투자 등에 필요한 자금을 한국 자본이 메우고 있다”고 했다.

항공산업 인프라에 대한 전략적 투자도 활발하다. 한화투자증권 등은 6월 런던 제2공항 게트윅의 지분 2.9%가량을 2800억원에 인수했다. 히드로공항 활주로 추가 건설 프로젝트엔 한국 보험사들이 올 들어 6700억원가량을 투자했다.

유럽으로 수출된 한국 자본은 임대료와 이자 등의 형태로 투자소득을 꾸준히 벌어들여 자본투자수지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동시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평가받는 선진국 자산 보유를 늘려 국가 전체적으로도 신용도를 높이는 간접효과를 내고 있다.

해외 투자가 부동산에 쏠려 한국 금융사끼리 입찰 경쟁을 벌일 정도로 과열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한 연기금 관계자는 “한국의 ‘부동산 불패’ 신화가 해외에서도 유효하다는 보장은 없다”며 “선진국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은 부동산을 위험자산으로 여겨 투자에 신중하게 접근한다”고 했다. 부동산 투자 쏠림을 피하고 다양한 대체투자 자산을 찾으려면 현지 거점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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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대상, 현지 인력 채용 확대

주요 IB를 중심으로 투자 대상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래에셋대우 런던법인은 기업금융과 항공기금융 등으로 투자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채용한 40대 현지 인력 두 명이 큰 몫을 했다. 현지 인력을 100% 활용하기 위해 투자 서류를 영어로 작성하고, 심사는 한국이 아니라 홍콩 본부에서 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김승욱 미래에셋대우 런던법인장은 “작년 미국과 유럽 IB들의 감원으로 좋은 인력이 시장에 나왔다”며 “고참 직원 몸값이 높아 채용에 부담이 있었지만 6개월 만에 연봉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왔다”고 했다.

KTB자산운용도 8월 신설한 미국 뉴욕법인을 활용해 투자 네트워크를 넓히고 있다. KEB하나은행 런던 지점은 최근 산업은행 SK건설 등과 함께 런던교통공사의 실버타운 하저터널 건설·운영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런던법인을 지점으로 전환한 뒤 영업을 강화해 자산 규모를 지난해 대비 두 배 이상으로 확대했다. 전채옥 국민은행 런던지점장은 “본사 신용을 이용한 자금 조달이 가능해진 만큼 인프라와 항공기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 적극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런던·파리=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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