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 투자하는 한국의 토종 사모펀드들…'금융의 삼성전자' 가능성 증명"
“한국뿐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투자하고 있는 사모펀드(PEF) 업계는 한국 금융업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토드 릴랜드 골드만삭스 아시아·태평양지역 공동대표 겸 투자은행(IB)부문 대표(사진)는 3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금융업에서도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탄생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출신인 릴랜드 대표는 1992년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금융·자본시장(FIG) 부문 글로벌 공동대표 등을 지낸 뒤 작년 10월부터 아태지역 IB 수장을 맡고 있다.

한국 금융업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기업을 여럿 배출한 제조업과 달리 국내에 안주하며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듣는다.

릴랜드 대표는 이를 금융업과 제조업 간 ‘자산 특성’의 차이로 요약했다. 그는 “공장 기계설비가 주요 자산인 제조업과 달리 금융업은 매일 빌딩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는 ‘전문 인력’이 자산”이라며 “이런 인력을 유치하고 체계적으로 육성·관리하려면 오랜 시간에 걸친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1869년 독일계 유대인 마르쿠스 골드만이 뉴욕에 세운 어음 거래회사를 모태로 한 골드만삭스는 올해로 창립 150주년을 맞았다. 릴랜드 대표는 “한국의 정보기술(IT)과 자동차산업에서 글로벌 기업이 탄생한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상당한 ‘도약’과 ‘따라잡기(캐치업)’가 밑거름이 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릴랜드 대표는 한국 금융업에서 이 같은 노력이 첫 결실을 본 부문으로 PEF를 꼽았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생겨난 한국의 토종 PEF는 이제 세계 연기금 등이 위탁한 수십억달러의 모 자금을 운용할 정도로 성장했다”며 “특히 골드만삭스 출신 뱅커들이 PEF를 주도적으로 설립해 성공적으로 운영해나가고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아시아 최대 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을 비롯해 김수민 유니슨캐피탈 대표, 이상호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 대표 등 국내 PEF 업계 리더 중 상당수가 골드만삭스를 거쳤다.

최근 부동산 등 대체투자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는 국내 IB에 대해서는 “중국이 엄격한 자본통제와 규제 등으로 주춤한 사이 한국이 글로벌 부동산 시장에서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골드만삭스가 미국 뉴욕에서 진행하는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인 ‘TSX 브로드웨이’에 올초 미래에셋대우가 3억7500만달러(약 4200억원)를 투자한 것을 예로 들었다.

릴랜드 대표는 “한 가지 확실한 점은 한국이 성장할 때 우리도 성장을 거듭해 왔다는 것”이라며 “골드만삭스의 한국 투자는 한국의 경제 발전과 궤를 같이해 왔다”고 소개했다. 골드만삭스는 1970년대부터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1992년에는 서울지점을 설립해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등 기업금융부터 주식·채권·통화·상품, 리서치, 자산관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까지 외국계 투자자 중 최대 규모인 40억달러(약 4조8000억원)를 한국에 투자했다.

릴랜드 대표는 “골드만삭스는 1990년대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에 투자해 이들이 금융지주로 거듭날 초석을 마련했고 최근엔 배달의민족과 직방 등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투자해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유니콘기업으로 키워냈다”며 “앞으로도 ‘파괴적 혁신’을 이룰 수 있는 한국 기업에 적극 투자해 성장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