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탐구

"남들이 가지 않은 길
中企와 함께 걸어갈 것"
“공터에 컨테이너를 두고 그곳을 사무실 삼아 고객들을 만납시다.”

경기 파주교하택지지구가 본격적인 택지개발 공사를 앞두고 있던 2003년. 기업은행에서 이 일대를 담당하고 있던 고양 능곡지점장은 이런 제안을 내놨다. 토지보상금을 받을 원주민을 ‘야전’에서 직접 만나 예금, 대출 등을 유치하려는 의도였다.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중소기업 관계자의 허락을 받아 이 기업 사옥 옆 공터에 컨테이너를 설치했다. 이곳에서 보상액에 대한 불만으로 예민해진 주민들을 어르고 달래며 시행자인 옛 대한주택공사(현 LH)가 원활하게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왔다.

파주교하지구 내에서 생산설비를 돌리고 있던 기업들엔 협동화산업단지를 조성할 수 있도록 편의도 제공했다. 교하지구 안에 있던 기업 중 380곳이 25개의 산업단지를 조성해 이동했다.

결과는 ‘대박’으로 이어졌다. 총 1800억원의 토지보상금이 능곡지점이 개설한 계좌에 흘러들어왔다. 당시 기업은행 전체 1년치 예금의 절반이 넘는 금액이었다. 지금도 기업은행에서 회자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김영규 IBK투자증권 사장이다.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택지개발 현장에서 쓴 ‘전설’

김 사장은 1960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79년 기업은행에 입사했다. 입사 후 중소기업 수출입 업무를 지원하는 외국환전문요원으로 서울 구로동지점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중소기업의 현실과 현장을 가장 잘 안다는 자타공인 ‘중소기업 전문가’의 사회생활 시작이었다.

김 사장 스스로 자신이 처음 두각을 나타냈다고 말하는 곳은 인천 만수동지점이다. 그는 여기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근무했다. 당시 인천 논현지구 개발을 앞두고 지역주민과 대한주택공사가 갈등을 빚고 있었다.

김 사장은 원주민으로 구성된 대책위원회를 찾아가 주민들의 민원을 듣고 보상 내용과 과정 등을 상세히 컨설팅했다. 대한주택공사와의 협상 자리도 만들어주고 원주민들의 보상액 수령도 도와줬다. 주변에서 볼 때 긁어 부스럼 만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약 800억원의 예금이 새롭게 들어왔습니다. 그해 전국 경영평가에서 만수동지점이 1위를 차지했죠.”

그는 이때 경험을 기반으로 능곡지점장 공모에 지원해 41세의 나이에 당시 최연소 지점장이 됐다. 그의 파주교하지구 컨테이너 영업은 지금도 기업은행에서 영업 우수 사례로 거론된다.

‘개척자 정신’으로 무장

그는 가는 곳마다 새로운 기록을 만들었다. 중소기업이 밀집해 기업은행에서 가장 중요한 점포로 꼽는 인천 남동공단지점으로 옮길 때도 그랬다. 그가 지점장으로 가기 전 이곳은 영업실적이 매년 줄고 있었다. 남동공단에 있는 6000여 개 중소기업 가운데 기업은행과 거래하는 곳은 30% 수준에 불과했다. ‘중소기업 금융의 맹주’로 통하는 기업은행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성적’이었다.

김 사장은 여기서 다시 한번 능력을 입증했다. 그는 지점장 취임 후 영업 방식을 확 바꿨다. 이전까지는 공단 내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읍소하는 게 다였다. 김 사장은 이 방식 대신 10~20개 기업으로 구성된 모임을 만들어 매일 점심 저녁을 같이했다. 6000개 기업 모두를 대상으로 영업하려면 이런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 결과 5년 만에 시장 점유율은 60%로 늘어났다. 김 사장은 “지금도 350개 이상 기업인 모임에 참여할 정도로 끈끈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김 사장에게도 큰 위기였다. 김 사장은 남동공단지점장으로 일하면서 이때까지 3조원 가까이 신규 대출을 늘렸다. 대출규모가 불어난 만큼 금융위기 여파에 따른 부실규모 확대를 피할 수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몇 개의 거래기업들이 기업회생을 신청하는 바람에 김 사장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바꿔놨다. 직접 법원에 출석해 거래기업들이 기업회생절차 대신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 기회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금융감독원이 도입한 현장 패스트트랙(중소기업 유동성공급 프로그램)도 적극 활용했다. 김 사장은 “힘들었지만 위기관리 능력을 인정받는 기회가 됐다”고 회상했다.

전 직원을 기업금융 전문가로

평생 ‘뱅커’로 살아온 그가 증권맨으로 변신한 건 2017년이다. 중소기업 전문가답게 IBK투자증권 사장을 맡자마자 취임 일성으로 ‘중소기업과의 협력 강화’를 내세웠다. 취임 직후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을 선정해 인증하는 제도인 ‘베스트 챔피언’을 도입했다. 베스트 챔피언에 선정된 회사에는 홍보영상 제작, 직원 교육 등 비금융 지원에서부터 매출채권 유동화, 기업공개(IPO) 등 금융 지원까지 가리지 않았다. 앞으로 100년간 중소기업과 함께하겠다는 의미로 ‘백동포럼’도 출범시켰다.

IBK투자증권은 그가 취임한 뒤 신입사원 채용을 중소기업과 함께하고 있다. IBK투자증권 공채 때 중소기업 신입사원도 함께 뽑는 방식이다. 2017년 첫 시도에서 부족했던 점을 보완해 오는 10월 두 번째 연합채용을 한다. 그는 “연합채용에서 IBK투자증권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1순위로 선택한 지원자에겐 가산점을 줄 것”이라며 “연봉, 복지 등에서 IBK투자증권과 비슷한 수준의 중소기업만 선별해 연합채용에 나선다”고 말했다.

최근엔 중소기업들의 유휴설비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빌려주는 공유경제 서비스도 시작했다.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중소기업의 기계설비를 판교에 있는 헬스케어 관련 기업에 빌려주는 식이다.

앞으로 그의 목표는 전 직원을 ‘PIB’로 키우는 것이다. PIB는 프라이빗뱅커(PB)와 투자은행(IB) 업무 담당자의 합성어다. ‘중소기업에 필요한 다양한 IB 수요를 맞추려면 전 직원을 PIB로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 김영규 사장 프로필

△1960년 전북 부안 출생
△1979년 전주상고 졸업
△중앙대 회계학과 중퇴
△서울디지털대 회계학과 졸업
△성균관대 언론학 석사
△1979년 기업은행 입사
△2003년 기업은행 능곡지점 지점장
△2005년 기업은행 남동공단지점 지점장
△2015년 기업은행 IB그룹 부행장
△2016년 제2서해안고속도로 대표이사
△2017년 IBK투자증권 사장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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