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영의 재무설계 가이드
<87> 주식계좌 vs 은퇴계좌

'은퇴계좌는 노후 안전판' 인식
주식 등 직접투자 상품 꺼리며
'주식계좌는 여윳돈'이라 생각
리스크 감수하고 적극 투자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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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 당첨금 100만원과 급여로 받은 100만원이 같다고 느끼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복권으로 생긴 돈이나 일해서 번 돈이나 사용하는 데는 아무런 차이가 없긴 하다. 그러나 복권 당첨금은 공돈으로 느껴져 헤프게 쓰기 쉬운 반면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은 함부로 쓰기 어렵다. 같은 액수의 돈이라도 ‘마음의 회계장부’에선 완전히 다르게 취급된다.

이런 원리는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은퇴 계좌와 주식 계좌를 통한 투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은퇴 계좌는 노후 안전판이란 생각에 원금 보존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묻어두고 위험한 투자는 꺼린다. 이에 비해 주식 계좌에는 여윳돈을 넣어 투자한다고 여겨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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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은퇴 계좌 투자가 소극적이란 연구가 많다. 한 연구는 미국 대학교수 및 직원들의 절반가량이 10년 넘게 자신의 은퇴 계좌 투자 포트폴리오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가입자 자신의 책임으로 투자하는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가운데 가장 흔한 401(k) 가입자 120만 명을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2년간 가입자의 80%가 포트폴리오 변경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달리 주식 계좌 투자는 활발하다. 미국 가계의 재무 상태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주식 계좌를 보유한 가계 중 4분의 3 정도가 주식 투자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주식 계좌와 은퇴 계좌에서의 투자 행태를 직접 비교한 조사나 연구를 찾아보긴 어렵다. 다만 주식 투자자와 펀드 투자자가 노후 준비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연구는 있다.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투자하는 실적배당형 상품이 대부분 펀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조사에서 주식 계좌와 은퇴 계좌 차이를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2018년 펀드 투자자 조사에서 주식 등 직접 투자 상품에만 투자한 사람(A그룹)은 21.7%, 펀드 투자만 한 사람(B그룹)은 16.5%, 주식 등 직접 투자와 펀드 투자를 병행한 사람(C그룹)은 17.4%였다. A그룹과 B그룹은 금융 투자 1순위 목적이 ‘특별한 목적은 아직 없지만 보유한 자산을 불리기 위해’로 동일했다. 2순위 목적도 ‘노후 대비’로 같았다. A그룹과 B그룹은 노후 대비를 하는 사람 비중에선 차이를 보였다. B그룹이 55.4%로 A그룹(50.5%)에 비해 많았다.

요약하면 주식 투자자와 펀드 투자자 모두 ‘일단 돈부터 벌자’는 생각인데, 주식 투자자가 노후 대비를 감안하지 않고 금융 투자에 더 적극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흥미로운 점은 주식 등 직접 투자와 펀드 투자를 병행한 사람들(C그룹)은 금융 투자 1순위 목적이 ‘노후 대비’고, 실제로 노후 대비를 하는 사람도 69.9%에 달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투자를 모두 할 만큼 투자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노후 대비’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 실행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마음의 회계장부는 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에서도 작동한다. 다시 말해 은퇴 계좌 종류에 따라 마음의 회계장부가 다르다. DC형 퇴직연금은 의무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IRP는 자유롭게 선택한다. 이런 차이 탓에 DC형 투자엔 소극적인 사람이 IRP 투자는 공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두 은퇴 계좌 적립금이 실제로 어떤 상품에 투자돼 있는지에서 확인된다. 지난해 말 기준 DC형 퇴직연금의 80%(39조8000억원)가 원리금보장형에, 15.9%(7조9000억원)가 실적배당형에 투자됐다.

IRP는 원리금보장형에 64.1%(12조3000억원), 실적배당형에 24.3%(4조7000억원)가 들어 있다. DC형이 IRP에 비해 원리금보장형 편중이 심한 것이다. IRP 계좌를 만든 사람은 그만큼 실적배당형 투자에 관심이 많고 그런 관심이 실적배당형에 대한 높은 투자 비중으로 이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이상을 종합하면 마음의 회계장부 때문에 주식 계좌 투자는 활발하게 하면서도 은퇴 계좌, 특히 DC형 투자엔 소극적인 실정이다. 물론 “불확실한 시장 상황에서 원리금보장형에 넣는 게 오히려 합리적인 거 아니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마음의 회계장부와 상관없이 은퇴 계좌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을 잘못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안전한 관리를 넘어 투자 기회를 아예 포기하거나 외면하는 수준으로까지 치닫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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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 손실 위험은 적절한 자산 배분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식형 펀드와 채권형 펀드 비중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요즘처럼 경기 전망이 어두울 때는 채권형 펀드 비중을 크게 높였다가 기업 실적이 호전될 것이란 예상이 쏟아지면 채권형 펀드 비중을 낮추는 대신 주식형 펀드 비중을 높이는 식이다. 이렇게 하려면 자신의 금융 투자 계좌를 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과 노력의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고 느낀다면 적당한 수수료를 지급하고 전문가 도움을 구해야 한다.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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