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의 저평가가 심해지면서 순현금이 시가총액보다 많은 이른바 ‘넷넷(net-net) 종목’이 크게 늘고 있다. 순현금이 많은 종목은 변동성 장세에서 버티는 힘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투자 수요가 성장주에 몰리면서 성장주와 가치주 간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현상이 글로벌 증시에 팽배해 있다. 증권업계에선 조만간 이 같은 불균형이 해소돼 넷넷 종목들이 재평가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시총보다 순현금 많은 '넷넷 기업' 151곳…"가치株의 시간이 온다"
기업 이익은 급증·PBR은 2008년 수준

9일 퀀트와이즈 등에 따르면 한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보다 순현금(당좌자산+현금 및 현금성 자산-총부채)이 많은 기업은 151개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넷넷 기업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가치투자자의 투자 ‘타깃’이기도 하다.

한국 증시가 과도한 저평가를 받으면서 이 같은 종목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증시 상장사들의 영업이익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는데 주가순자산비율(PBR: 시가총액/자본총계)은 0.8배로 당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98조원으로 2008년(95조8000억원)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재닛 창 JP모건자산운용 아시아·태평양 담당 투자 전문가는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매우 매력적”이라고 밝혔다.

다우기술 등 시가총액보다 현금 많아

현재 시가총액 대비 순현금 비중이 가장 큰 곳은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체인 다우기술로 628.75%에 달한다. 이 회사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2864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3239억원)에 이미 근접했다.

하지만 주가는 지난 5월 금융위원회가 자회사 키움증권을 주축으로 한 키움뱅크에 제3인터넷은행 예비인가를 불허한 영향으로 급락한 뒤 1만9000원대에서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다음달 인터넷은행 인가 신청을 앞두고 다우기술이 재인가를 추진할 것으로 본다”며 “키움인터넷은행이 설립되면 다우기술이 시스템·인프라 구축 혜택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KISCO홀딩스아이디스홀딩스의 순현금 비중도 각각 391.63%, 285.13%에 달한다. 두 종목은 ‘가치투자의 명가’인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 지분을 늘리고 있는 종목으로 증권가에서 유명하다.

한국밸류운용은 KISCO홀딩스와 아이디스홀딩스 지분을 각각 10.84%, 15.98% 보유 중이다. 한국밸류운용은 지난해 KISCO홀딩스에 회사 보유 현금이 시가총액보다 훨씬 많다며 주주가치를 높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두 차례에 걸쳐 보내기도 했다.

가치투자자들은 요즘 저평가된 가치주를 선별하는 데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주당순이익)보다 PBR을 더 많이 활용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PBR 0.23배(12개월 선행 기준)로 주요 종목 중 가장 저평가된 주식으로 꼽힌다.

PBR이 1배 미만이면 시가총액이 장부상 순자산가치(청산가치)에도 못 미칠 정도로 저평가 상태라는 의미다. 대한제강(PBR 0.32배)도 주가가 크게 저평가된 종목이란 평가다. 저가 철근 판매 비중이 줄면서 올해 영업이익(컨센서스 기준·490억원)이 작년에 비해 1877.7%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치주, 성장주와 격차 좁힐 것”

글로벌 증시에서 성장주에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심해지면서 가치주와 성장주 간 격차는 크게 벌어져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격차가 조만간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솔솔 나오고 있다.

마르코 콜라노빅 JP모간 시장분석가는 “미국 가치주와 시장 평균 간의 격차가 1999~2000년 닷컴 버블 때 수준까지 벌어졌다”며 “순환매가 일어나면 스몰캡, 원유·가스 등 낮은 PER, PBR 종목 주가가 지금보다 훨씬 더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는 “미국과 비슷하게 한국도 가치주가 너무 많이 떨어졌다”며 “글로벌 투자 트렌드가 가치주로 쏠리면 한국도 가치주가 성장주와의 격차를 좁히며 반등 시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동현/임근호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