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어벤져스
(5) KB자산운용 밸류운용팀

주주활동으로 펀드업계 새 바람
경영권 노린 사모펀드와는 달라
KB자산운용 밸류운용1팀. 왼쪽부터 박준범 매니저, 정용현 팀장, 송종은 매니저.  /최만수 기자

KB자산운용 밸류운용1팀. 왼쪽부터 박준범 매니저, 정용현 팀장, 송종은 매니저. /최만수 기자

“이수만 회장님의 개인 회사 라이크기획이 에스엠(29,800 -1.81%)엔터테인먼트(에스엠)에서 수취하는 인세는 소액주주의 이해와 상충합니다. 라이크기획과 에스엠 간 합병, 그리고 30% 배당 성향을 요청합니다.”

골프존 이어 에스엠 정조준…"공모펀드, 더는 주총 거수기 아니다"

KB자산운용 밸류운용본부가 지난 5일 공개한 주주서한은 증권가를 깜짝 놀라게 했다. 공모펀드 운용사는 ‘주주총회 거수기’일 뿐이라는 통념을 깨고 강공(强攻)에 나섰기 때문이다. 에두르지 않고 이 회장을 직접 겨냥했다. 사외이사를 선임해 이사회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KB운용은 이 회사 지분 7.59%를 보유한 3대 주주다.

KB운용은 이처럼 적극적인 주주 활동으로 펀드 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작년 3월 행동주의 펀드 ‘KB주주가치포커스’를 설정한 뒤 골프존(67,400 -1.17%), 컴투스(91,000 -1.19%), 효성티앤씨(158,000 +0.64%), 광주신세계(163,000 0.00%) 등에 수차례 주주서한을 보내 성과를 거뒀다. KB주주가치포커스의 올해 수익률은 10일 기준 16.3%로 국내 주식형펀드 중 최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정용현 밸류운용1팀장은 “주주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 저평가 해소 시점을 앞당기는 게 펀드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안 오르면 나서서 끌어올린다”

2017년 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 지침인 스튜어드십코드가 국내에 도입됐지만 아직 실천에 나선 공모 운용사는 거의 없다. 주주 행동주의를 표방한 펀드도 KB주주가치포커스와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한국밸류10년투자주주행복’ 두 개뿐이다. 그중에서도 주주서한을 보내는 등 적극적인 주주 관여 활동을 하는 곳은 KB가 유일하다. 대부분 공모운용사는 투자기업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몸을 사리고 있다.

정 팀장은 “선진국에서 펀드의 주주 관여 활동은 이미 보편적인 투자 전략으로 자리잡았다”며 “스튜어드십코드가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기보다 장기적인 트렌드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선제적으로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튜어드십코드가 증시에 영향력이 큰 연기금을 통해 일부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있지만, KB운용의 주주 관여 활동은 철저히 ‘주주가치 증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KB운용의 가장 성공적인 주주 관여 활동 사례로는 골프존이 꼽힌다. 2대 주주인 KB운용은 작년 5월 골프존에 주총 결의를 취소하라는 소송을 냈다. 국내 자산운용사가 투자한 회사에 주주 행동 차원의 소송을 낸 것은 처음이었다. 골프존이 정기 주총에서 골프존뉴딘으로부터 조이마루 사업부를 949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는데 KB운용은 이를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결정으로 봤다. 매년 적자를 내고 있는 사업부를 지나치게 비싼 값에 인수한다고 해석했다.

KB운용의 반발에 골프존은 백기를 들었다. 이후 골프존 주가는 59.18% 상승했다. 정 팀장은 “회사 가치가 인정받으면서 주가도 올랐다”며 “지금은 회사 측에서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험에 투자하는 ‘피터 린치 전략’

정 팀장이 운용하는 KB주주가치포커스는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하지만 저평가된 종목들에 장기 투자하는 가치투자 전략도 병행한다. 철저히 자신이 잘 아는 중소형주에만 집중 투자한다. 기업의 제품을 직접 써보고 종목을 발굴하는 경우가 많다. 피터 린치식 가치투자다. 휠라코리아(54,500 +3.02%) 컴투스 골프존 등이 대표적이다.

정 팀장은 “반도체 바이오 화학 등은 업황을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며 “개인투자자들도 자신이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품을 통해 투자 아이디어를 얻으면 승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번에 에스엠에 경영 개선을 요구한 것도 이 회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KB운용은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에스엠에 가장 정통한 운용사로 꼽힌다. KB운용 밸류운용본부(본부장 최웅필)는 2011~2012년 에스엠의 고속성장기에 최대 11.5%까지 지분을 보유해 10배 이상 차익을 거뒀다. 최 본부장은 국내 대표 가치투자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당시 최 본부장과 정 팀장은 수차례 소녀시대의 일본 콘서트를 다니며 투자 아이디어를 얻었다. 증권가에서 엔터주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때였다.

정 팀장은 “회사의 역사와 경영구조에 대해 속속들이 꿰고 있기 때문에 경영상 핵심적인 약점을 파악해 개선하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에스엠은 주가가 고점 대비 많이 하락해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 매력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라이크기획 문제만 해결되면 구조적으로 재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KB운용의 주주 활동은 경영권을 노리고 행동에 나서는 사모펀드(PEF)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호적 투자자로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도와주겠다는 것”이라며 “대주주와 투자자 간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KB주주가치포커스에는 올 들어 100억원이 순유입됐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에서 1조1174억원이 빠져나간 것과 대조적이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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