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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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가 고착화되며 자산운용 업계가 재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 연 1~2%에 머물고 있는 은행 정기예금에 묶여있던 자금이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하는 금융투자상품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다. 최근 미·중 무역전쟁 재개 등의 요인으로 국내 증시 조정폭이 커지자 해외나 대체투자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로 특히 많은 자금이 몰리는 흐름이다.

운용자산 1000조원 돌파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운용사의 운용자산은 전년 말보다 69조1000억원(7.3%) 증가한 총 1018조7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연간 기준 사상 최대치다. 이 중 펀드를 통해 운용사에 흘러든 돈은 551조원이다. 1년 전보다 53조8000억원(10.8%) 증가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금액에 관계없이 누구나 투자할 수 있는 공모펀드로 6조6000억원, 기관투자가와 고액자산가 들이 주로 찾는 사모펀드로 47조2000억원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자산운용사에 알아서 돈을 굴려 달라고 맡긴 일임계약도 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일임계약 총액은 467조7000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15조3000억원 늘어났다. 일임계약을 선호하는 연기금과 보험사 고객이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운용사별로 수익성은 양극화가 심화됐다. 작년 운용사들의 순이익은 총 6060억원으로 전년 대비 1.4%(87억원) 감소했다. 243개 운용사 중 146개사가 흑자, 97개사는 적자를 냈다. 적자회사 비율은 39.9%로 전년 대비 4.4%포인트 늘었다. 몇 곳의 대형사가 순이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구조가 고착되는 추세란 분석이다. 확실한 히트상품이 있거나 기관 영업망이 탄탄한 대형사가 시장을 좌지우지했다는 평가가 많다.
"脫국내·脫주식"…해외·대체투자에 뭉칫돈 몰린다
“국내 주식 대안을 찾아라”

최근 자산운용업계의 화두는 ‘탈(脫) 국내, 탈 주식’이다. 국내 증시가 부진한 흐름을 보이면서 국내 주식에만 투자해서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기 어려워졌다는 진단이다. 펀드 평가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1조1412억원이 빠져나갔다. 3월 이후 증시가 박스권에 머물면서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는 게 자금 이탈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공모 주식형 펀드의 올초 이후 평균 수익률은 1.11%에 불과하다.

채권에만 투자하는 국내 채권형 펀드(6조723억원 순유입) 및 해외 채권형 펀드(1조719억원)에는 신규 자금이 유입됐다. 안정적 투자성향이 짙은 투자자들이 주식형 펀드 대신 채권형이나 혼합형 상품을 골랐다는 게 자산운용 업계의 설명이다.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부동산대출 채권 등 국내외 부동산에 투자하는 펀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올 들어 국내 부동산과 해외 부동산 상품에 들어온 자금은 각각 826억원, 3276억원이다. 채권이나 고배당주, 부동산 등에 투자해 여기서 발생한 수익을 꾸준히 쌓아가는 인컴펀드도 인기다. 올 들어 4223억원의 자금이 새롭게 들어왔다.

해외주식형 펀드 중에서는 미래에셋TIGER차이나A레버리지(53.03%), 미래에셋차이나A레버리지1.5(34.74%), 삼성중국본토레버리지(29.75%) 등 중국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수익률이 두드러졌다.

종목 랠리에 중소형주 펀드 주목

약세장 속에서 중소형주 펀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중소형주 실적이 대형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데다 MSCI신흥국지수 내 한국 비중 축소에 따른 외국인 자금 이탈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기 때문이다.

성과도 좋다. 올 들어 지난 24일까지 국내 액티브주식형 펀드 중 수익률이 가장 좋은 펀드는 중소형주 펀드인 ‘한국투자중소밸류’(16.25%)다. ‘신한BNPP뉴그로스중소형주’(14.23%), ‘한국밸류10년투자중소형’(11.97%) 등도 주식형 펀드 평균 수익률을 크게 앞섰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는 “미·중 무역전쟁 영향으로 경기에 민감한 대형 수출주들이 주춤하면서 중소형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당분간 지수는 박스권에 머물면서 중소형주가 강세를 보이는 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퇴직연금에 거는 기대

전문가들은 재테크 시장에서 운용사의 존재감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가계자산에서 금융투자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크지 않은 만큼 자본시장으로 가계자금이 흘러들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특히 퇴직연금 시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한국은 퇴직연금 도입 초기로 매년 연금에 새로 들어오는 돈이 나가는 돈보다 월등히 많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190조원이다. 전년 말보다 21조6000억원(12.8%)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모펀드를 포함한 금융투자상품에 더 많은 연금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저금리 시대를 맞아 원금을 보장하는 예금의 매력이 반감됐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자본시장특별위원회가 최근 기금형 퇴직연금과 디폴트 옵션 도입 등의 내용이 담긴 퇴직연금 제도 개선안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최운열 자본시장특위 위원장은 “퇴직연금 연 수익률을 3%만 끌어올려도 은퇴 시점에 적립금이 56% 증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퇴직연금 제도 개선은 국민의 안정적인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