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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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들이 블록체인인 줄 모르고 쓰는 블록체인이 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사용성과 유용성이 관건이 됐다. 블록체인이 자기증명의 시대를 지나 이제 '인프라'로서 실용화에 박차를 가하면서다.

초기 블록체인은 개발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불편을 감수하며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기억하기 어려운 해시값을 입력하고 비용도 지불해야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었다. 해시값을 잊어 비트코인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가상화폐(암호화폐)를 만들거나 암호화폐 주소를 만들 수 있다는 이유로 블록체인은 개발자들의 '장난감' 역할을 했다.

이 단계에선 실용성은 낮았지만 위·변조가 불가능하고 신뢰 가능한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블록체인의 가능성이 증명됐다. 베이징대 교수 성폭행 사건을 공안의 감시를 피해 이더리움에 기록한 사례가 대표적. 해당 내용은 위챗이나 웨이보, 베이징대 홈페이지 등에서 빠르게 삭제됐지만 이더리움에는 아직도 기록이 남아있다.

이점에 착안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블록체인 서비스'를 만드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 쓰기 편한 서비스가 좋은 서비스란 얘기다. 개발자가 아니라면 굳이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블록체인을 쓸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최근 서울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는 100여명의 블록체인 사용자 경험(UX) 디자이너가 모여 토론을 벌였다. 국내 최초 블록체인 UX 디자이너 밋업인 'BUX 2019'에서 소민경 코인원 UX 디자이너는 "블록체인 사용자가 직면하는 문제의 절반 이상은 디자인 문제"라며 "업계 종사자 중 디자이너 비율은 1%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미 사용성이 확보된 기존 서비스와 연계하는 경우도 있다. 페이프로토콜은 전자결제대행업체(PG) 다날 가맹점에서 암호화폐를 사용하도록 했다. 스마트폰에 전용 애플리케이션(앱: 응용프로그램)을 설치하면 가맹점에 QR코드를 제시해 실시간으로 결제할 수 있다.

사용 방법도 포인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암호화폐는 가격 변동성이 커 소비자가 상품 구매를 결정한 때와 가격을 결제하는 시점, 가맹점이 결제 금액을 정산하는 시점의 가격이 모두 다를 수 있다. 페이프로토콜은 이 변동성 부담을 운영사인 페이코인이 부담해 사용자와 가맹점 모두 암호화폐 가격 변동성에 따른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했다.

사용성에 초점을 맞춰 블록체인의 핵심으로 간주되는 '탈중앙화'를 포기한 경우도 있다. 카카오가 그렇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계열사 그라운드X는 자사 블록체인 클레이튼에 탑재될 앱을 '분산형 앱(DApp·디앱)' 대신 '블록체인 앱(BApp·비앱)'이란 용어로 부른다. 카카오 관계사인 두나무 자회사 람다256의 루니버스도 마찬가지다.

사용자 입장에서 '얼마나 편리한가'의 문제가 '어떤 블록체인을 쓰느냐'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탈중앙화를 명분으로 내걸고 실용성이 부족한 블록체인을 쓰는 것보다, 당장 사용성을 갖춘 블록체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블록체인은 서비스 뒷단에서 작동하는 만큼 사용자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도 감안됐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비디오 테이프 시장에서 소니는 베타맥스를, JVC는 VHS 기술을 내놓았다. 성능은 베타맥스가 뛰어났지만 살아남은 것은 VHS"라며 "사용자 입장에서 VHS가 더 쓰기 편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블록체인 역시 마찬가지다. 사용자에게 쓰기 쉽고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살아남아 표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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