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반포동의 한 대형 증권사 자산관리(WM)센터에서 프라이빗뱅킹(PB) 업무를 맡고 있는 김 팀장은 요즘 1주일에 두세 건씩 이민에 대한 고객 문의를 받는다. 30억원 이상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주식 채권 펀드 등 투자 컨설팅을 제공하는 게 주된 임무지만 투자이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관련 업무 비중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팀장은 “중소·중견업체를 경영해온 60~70대 오너 기업인 가운데 상속·증여세로 회사를 빼앗길 바에야 차라리 내 손으로 정리한 뒤 해외로 가겠다고 얘기하는 분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미국 캐나다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등 상속·증여세 부담이 낮고 생활 여건이 좋은 선진국 위주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이민을 염두에 두고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등을 통해 미리 해외 주식과 부동산을 취득하려는 수요도 늘고 있다. 국내 한 대형 자산운용사 대표는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에 현지 법인을 세운 뒤 국내 자산을 조금씩 해외 주식이나 채권으로 바꿔 옮기는 사례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남 부자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해외 주식 직구 열풍’도 이와 전혀 무관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은행에도 해외 부동산 투자 방안 등을 묻는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박신욱 신한은행 세무사는 “해외 부동산 투자액이 5억원을 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투자 규모 역시 예년에 비해 커졌다”고 말했다.

고액 자산가일수록 해외 부동산에 주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 주택은 종합부동산세 합산 대상에서 빠지는 데다 해당국의 세제를 잘 활용하면 양도소득세는 물론 상속·증여세를 크게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호기/정지은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