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은지 21년…건재한 쌍용證 '혁신 DNA'
은둔 이미지가 강했던 한양증권의 체질을 취임 1년 만에 확 바꾸고 있는 임재택 사장, SK증권의 5년 연속 흑자를 이끈 김신 사장, ‘가치투자 1세대’로 이제는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쌍용투자증권 출신이라는 점이다. 쌍용증권이 1998년 문을 닫은 뒤 올해로 21년이 됐다. 당시 30~40대 젊은 피로 여의도 바닥을 누볐던 ‘쌍용인’들은 이제 금융투자업계 곳곳에서 최고경영자(CEO)로 활약하고 있다.

‘CEO 사관학교’ 명성 남겨

쌍용증권은 쌍용그룹이 효성그룹 계열사였던 효성증권을 인수해 1983년 설립했다. 1987년 재계 5위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던 쌍용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1998년 해외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H&Q에 매각됐다. 회사 이름은 굿모닝증권으로 바뀌었다. 이때 일부는 굿모닝증권에 남았고, 일부는 다른 금융투자사로 이동했다.

증시 활황기였던 1987~1989년에 쌍용증권에 입사했던 인사들은 이제 5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이들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대표급으로 성장해 활약하고 있다. 임 사장은 1987년 쌍용증권에 입사해 굿모닝증권과 신한금융투자에서 부장과 본부장으로 일했다. 작년 3월부터는 한양증권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3년부터 SK증권을 이끌고 있는 김 사장과 2017년 흥국증권 대표가 된 주원 사장, 외국계 증권사 최장수(11년) CEO인 임동수 CLSA 대표도 쌍용증권 출신이다. 전 키움자산운용 대표인 윤수영 키움증권 부사장은 2000년 키움증권이 설립될 때 합류한 창립멤버 중 한 명이다. 쌍용증권이 H&Q에 팔린 이후 이 회사 출신 중 상당수가 키움증권에 합류해 자기자본 기준 9위 증권사로 키워냈다.

자산운용업계에도 쌍용증권 출신 CEO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강 회장, 오재환 DB자산운용 대표, 원종상 PTR자산운용 대표, 전용배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사장, 추경호 수림자산운용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 시장을 주도하는 이병훈 ACPC 대표도 쌍용증권 M&A실 출신이다. 업계에선 임원, 본부장까지 합치면 총 40~50명이 금융투자업계에 몸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화요원 모집’한 혁신 DNA

쌍용증권은 당시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재들의 집합소였다. 길지 않았던 존재 기간에도 불구하고 쌍용증권 출신들이 여전히 금융투자업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이유다.

초대 사장이었던 고병우 사장은 자본시장 개방을 앞두고 인재 선발에 온 힘을 다했다.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론을 거론하며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키우겠다”고 공언했다.

사원모집 공고에도 항상 ‘국제화요원 모집’이라고 표시했다. 임 사장은 “학부에서 다양한 전공을 공부한 뒤 국내외 유수의 경영대학원(MBA)을 나온 임직원들이 200여 명은 됐다”며 “곳곳에서 우수한 인재가 몰리다 보니 사내에서 학력 자랑을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교육도 철저했다. 모든 신입사원을 입사 후 6개월 동안 리서치센터에서 일하게 했다. 시장과 산업을 보는 눈을 키우게 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시도도 많이 했다. 1985년 쌍용경제연구소를 세웠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모의투자경연대회를 열었다.

1991년 국내 최초로 인수합병(M&A) 중개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임 사장은 “공격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혁신의 분위기가 쌍용 출신들의 DNA에 박혔다”고 설명했다.

국제화를 강조했던 것은 해외주식 중개 및 투자은행(IB) 업무가 중요해진 현재 상황과 맞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쌍용증권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외국인 리서치센터장을 채용하기도 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스티브 마빈 센터장이다.

강 회장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국제적 사고를 가지고 일한 경험이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투자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잘나가던 회사가 한순간에 고꾸라진 것을 지켜보면서 위기 대비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