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면허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이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한 영업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강력 경고에 잠시 모습을 감췄지만 최근 단속 강도가 약해지자 다시 한국시장에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정부 경고 안 먹혔나…'無면허' 외국계 IB 영업재개
3일 IB업계에 따르면 한국주택금융공사는 다음달로 예정된 5억달러(약 5600억원)어치 해외채권 발행주관사단에 싱가포르개발은행(DBS)그룹을 포함시켰다. DBS그룹은 국내 증권업 면허 없이 한국 기업의 해외채권 발행주관을 맡아온 외국계 IB 중 하나다. 지난해 총 2건, 2억6500만달러(인수물량 기준)어치 한국 기업 해외채권 발행주관을 맡았다.

기획재정부가 연초 무면허 외국계 IB의 한국 기업 상대 영업활동을 차단하겠다고 엄포를 놨음에도 반짝 효과에 그쳤다는 평가다. 당시 기재부의 경고로 독일 코메르츠방크, 일본 미쓰비시UFJ증권 등 일부 외국계 IB는 한국 기업 채권 발행을 진행하던 도중 발행주관사 자리를 내놓기도 했다. 기재부는 발행신고 접수와 수요예측(기관 대상 사전청약) 시기 결정 등 한국 기업의 해외채권 발행에 필요한 행정 업무를 맡고 있다.

3개월 만에 무면허 외국계 IB들이 활동을 재개한 배경엔 ‘한국 정부의 제재의지가 예상보다 약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기재부에선 지난 1월 말 정기인사 때 해당 업무를 맡고 있는 국제금융과 주요 인력이 교체됐다. 부서가 새롭게 진용을 갖춰가는 과정에서 무면허 IB에 대한 고강도 단속의지가 이어지지 못했다는 게 IB업계의 시각이다.

“무면허 IB의 영업에 대한 위법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금융위원회도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국에서 국내 기업의 증권발행, 금융상품 판매 및 중개업무를 하려면 증권업 면허가 있어야 한다. 다만 활동무대가 해외면 면허 없이 한국 기업을 고객으로 삼더라도 처벌받는다는 규정이 없다.

국내에서 정식으로 영업 중인 다른 IB들의 불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무면허 IB가 한국에 사무실도 두지 않고 한국 기업을 상대로 돈을 벌면서 세금은 전혀 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무면허 IB가 한국에서 한 푼의 비용 부담 없이 우리와 똑같은 사업으로 수익을 내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정당한 자격을 갖춘 IB들끼리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