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S10에 탑재된 ‘가상화폐(암호화폐) 지갑’의 상황은 좀 별나다. 삼성전자는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았지만 국내외에서 관심이 무척 높다. 각종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리뷰어들이 앞다퉈 갤럭시S10의 암호화폐 지갑 앱(응용프로그램) ‘삼성 블록체인 월렛’의 사용기를 올린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암호화폐 지갑 그 자체는 아주 새로운 프로그램이 아니다. 굳이 갤럭시S10이 아니어도 구글 플레이스토어, 애플 앱스토어 등을 통해 어느 스마트폰에서든 이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갤럭시S10 암호화폐 지갑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남다르다.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위 스마트폰에 '기본 탑재'됐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손 안에 암호화폐 지갑이 들어와, 일상에서 누구든 마음먹으면 암호화폐를 친숙하게 접하고 사용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는 어떨까. 다른 암호화폐 지갑들과의 차별점은 있을까. 갤럭시S10에 탑재된 삼성 블록체인 월렛을 직접 써봤다.(상단 영상 참조)
삼성 블록체인 월렛을 만드는 절차. 비밀번호와 지문을 등록하고 무작위로 생성된 12개의 영어 단어를 기억하면 된다.(사진=김산하 기자)
삼성 블록체인 월렛을 만드는 절차. 비밀번호와 지문을 등록하고 무작위로 생성된 12개의 영어 단어를 기억하면 된다.(사진=김산하 기자)
우선 ‘삼성 블록체인 키스토어’ 앱에서 지갑부터 만들어야 한다. 새 암호화폐 지갑을 만들 수도 있지만 이전에 사용하던 외부 암호화폐 지갑을 가져오는 것도 가능했다.

지갑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다. 비밀번호와 지문을 등록하면 무작위 추출된 12개의 영어 단어가 나온다. 일종의 ‘무작위 통장 비밀번호’다. 해당 단어를 안전한 곳에 적어놓으면 지갑 생성 절차가 완료된다.

평소 이 단어들을 일일이 입력할 필요는 없다. 지문인식만으로 손쉽게 지갑을 이용할 수 있다. 만약 휴대폰을 잃어버리거나 외부에서 지갑에 접속할 필요가 있는 경우엔 적어놓은 영어 단어를 사용하면 된다. 해당 단어를 입력해 암호화폐 지갑을 되찾을 수 있다.

기존 은행계좌 개설, 본인확인 절차와 비교하면 허술해 보일 정도로 간단했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암호화폐 지갑의 보안성이 높기 때문에 이같은 절차만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복원 문구를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해킹 당하거나 외부인이 접속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키스토어 설정을 마치고 나면 암호화폐 지갑을 사용할 수 있었다. 처음 열자마자 ‘삼성이 만든 자체 앱답다’고 느꼈다. 기본 탑재 앱인 만큼 그동안 기자가 써본 모든 암호화폐 관련 지갑 앱을 통틀어 가장 빠른 동작 속도를 보였다. 메뉴 구성, 사용자 인터페이스·경험(UI·UX)이 최적화돼 편하게 쓸 수 있었다.

시험 삼아 암호화폐 이더리움을 주고받아 봤다. 이더리움을 선택해 ‘받기’ 버튼을 누르고 상대방에게 QR코드를 보여주는 것으로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다.

상대방이 내 QR코드를 찍고 이더리움을 전송하자 금세 지갑에 3000원 상당의 이더리움이 입금됐다. 송금도 간단했다. 상대방의 암호화폐 지갑 주소나 QR코드를 입력하고, 보낼 금액과 수수료를 선택한 뒤 지문인식 절차를 거치면 끝이다. 몇 초 안에 이더리움이 상대방 계좌로 빠져나갔다.
갤럭시 S10에서는 지문 인식 기능으로 수 초 이내 암호화폐 송금이 가능했다(사진=김산하 기자)
갤럭시 S10에서는 지문 인식 기능으로 수 초 이내 암호화폐 송금이 가능했다(사진=김산하 기자)
삼성 블록체인 월렛은 기본적으로 이더리움 기반 암호화폐 18종을 제공하며 ‘커스텀 토큰 추가’ 기능을 통해 다양한 암호화폐를 추가할 수 있다.

다른 암호화폐나 플랫폼 코인 지원 여부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이더리움 외에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하고 있다. 필요한 부분들은 계속 지원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문인식을 활용한 간편송금 기능보다 더 주목할 삼성 블록체인 월렛의 핵심 기능은 ‘댑스토어(Dapp Store)’였다. ‘분산형 앱’을 뜻하는 댑은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서 돌아가게끔 만든 앱이라 생각하면 된다. 모든 활동이 블록체인 위에서 동작돼 개인정보 유출, 권리 침해 등을 사전에 방지하고 암호화폐와 연동해 다양한 서비스들을 선보일 수 있다.

삼성 블록체인 월렛에서 기본 제공하는 4종의 초기 댑은 △블록체인 기반 뷰티콘텐츠를 제공하는 ‘코스미’ △게임간 아이템 공유·거래를 목표로 하는 ‘엔진’ △디지털 고양이 수집게임 ‘크립토키티’ △암호화폐 결제서비스 ‘코인덕’ 등이다.

이들 댑은 갤럭시S10 암호화폐 지갑과 즉시 연동이 가능했다. 기존 댑의 경우 별도로 지갑 주소를 넣고 인증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이러한 과정이 생략됐다. ‘삼성 블록체인 키스토어와 연결’ 버튼을 누르고 지문인식을 완료하는 것만으로 댑들과 곧바로 연동됐다. 일반 사용자들도 무리 없이 블록체인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 확실히 도움 되는 기능이다.
삼성 블록체인 월렛에서는 '삼성 키스토어로 시작하기'버튼을 통해 별도의 가입 없이도 '탈 중앙화 앱(Dapps)'들을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사진=김산하 기자)
삼성 블록체인 월렛에서는 '삼성 키스토어로 시작하기'버튼을 통해 별도의 가입 없이도 '탈 중앙화 앱(Dapps)'들을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사진=김산하 기자)
댑 탭에서 ‘내역’ 버튼을 누르니 ‘구매 내역’ 공간이 등장했다. 이 공간에는 앞으로 유료 댑 등이 지원돼 다양한 댑들의 플랫폼 역할을 할 것으로 짐작됐다.

삼성 블록체인 월렛이 앱스토어 플랫폼 같은 형태로 나아간다면 구글(플레이스토어)과 애플(앱스토어)이 독점한 앱 플랫폼 대항마가 될 수도 있어보였다.

삼성 관계자는 암호화폐의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 월렛을 만든 이유에 대해 “신기술인 블록체인 분야의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만큼 선제적으로 생태계를 만들고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자체 모바일 보안플랫폼 ‘녹스’의 뛰어난 보안성을 활용해 안전하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

삼성 블록체인 월렛을 사용해본 느낌은 ‘일상형 혁신’으로 요약 가능했다. 기존 암호화폐 지갑과 기능상으로 많은 차이점이 있다고 하긴 어려웠지만, 사용이 어렵고 불편했던 암호화폐 지갑을 일상으로 갖고 들어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쩌면 갤럭시S10의 이 기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생활 속에서 암호화폐를 사용하게 만드는 ‘촉매’가 되지 않을까.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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