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모씨(58)는 지난해 아찔한 경험을 했다. 박씨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신분증을 위조한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팔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것. 알바생을 속이고 담배를 산 학생은 이틀 뒤 다시 박씨의 편의점에 와서 담배를 사다가 덜미를 잡혔지만 경찰은 훈방 조치했다. 박씨는 “미성년자에게 술, 담배를 팔면 판매자만 처벌받는다”며 “청소년 중에는 알바생이나 점주의 실수를 트집 잡아 ‘자진신고 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지문 확인까지 하는 편의점

40대로 보이는 미성년자에 술·담배 팔았는데, 청소년에 속은 죄…업주만 벌주는 '이상한' 법
미성년자 주류·담배 판매와 관련한 처벌을 두고 편의점 등 업주들의 불만이 날로 커지고 있다. 만 19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 술·담배를 팔 경우 업주는 형사처벌(청소년보호법)과 함께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식품위생안전법)을 받지만, 신분을 속인 미성년자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점주나 알바생이 위·변조된 신분증을 걸러내기란 쉽지 않다. 이들은 자신과 얼굴이 비슷한 형제의 신분증을 쓰거나 생년월일의 숫자를 긁어내는 등의 수법을 쓴다. 미성년자 외모가 성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방심하는 경우도 있다. 한 경찰관은 “미성년자 담배 판매 신고가 와서 갔더니 알바생을 속인 17세 청소년의 외모가 내가 봐도 40대로 보였다”며 “알바생이 너무 억울해하길래 즉결심판에 해당 청소년을 데리고 갔더니 얼굴을 본 판사가 알바생에게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고 전했다.

미성년자를 걸러내기 위한 업주들의 노력은 날로 정교해지고 있다. 서울 사근동의 한 편의점 알바생은 “이전에 청소년 담배 판매로 두 차례 영업정지를 당해 이번엔 사장님이 지문검색기까지 도입했다”며 “신분증과 함께 지문까지 확인하는 건데 실제로 위조 신분증을 몇 건 적발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아예 폐쇄회로TV(CCTV)를 꺼놓는 점포도 있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한 편의점주는 “영수증을 안 주고 CCTV를 꺼놓으면 경찰이라도 판매 여부를 확인할 재간이 없다”며 “요즘은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일은 거의 없으니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점주가 꽤 많다”고 귀띔했다.

술·담배 사는 청소년도 처벌해야

미성년자에게 술·담배를 판매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다만 고의성이 없는 것으로 인정되면 형사처벌은 면할 수 있다. 문제는 행정처분이다. 지방자치단체는 고의성과 상관없이 판매 적발 시 영업정지 2개월, 2차 적발 시 3개월, 3차 적발 시 허가 취소나 영업소 폐쇄 처분을 내린다. 서울 행당동의 편의점주 서모씨(69)는 “알바생이 미성년자에게 속아서 담배를 팔았다가 담배 판매 영업정지 1개월을 당했다”며 “편의점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하는 담배를 팔지 못하면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신분을 속이고 술·담배를 사는 청소년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의 청소년보호법으로는 청소년 교화는 물론 보호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술·담배를 구입한 미성년자도 처벌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형사처벌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봉사명령 등 최소한의 책임을 지우는 것이 교육 효과도 있고 재발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현진/정의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