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치매 증상 보이면 법원부터 가라…후견인 선임해야 재산 손실 방지
고령의 부모가 치매 증상을 보인다면 가장 먼저 찾아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물론 병원이다. 그런데 병원 다음으로 중요하고 시급하게 찾아야 할 곳이 있다. 법원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부모의 후견인을 선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성년자에게 법정대리인이 필요하듯 판단 능력이 결여된 성인에게도 후견인이 필요하다. 후견 개시 없이 치매 상태에서 중대한 법률행위를 하는 경우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 가령 치매 판정을 받은 고령의 아버지가 판단 능력을 상실한 채 투자할 가치가 전혀 없는 부동산을 비싸게 매수한 경우, 혹은 전 재산을 엉뚱한 곳에 증여한 경우 가족들은 당연히 해당 행위를 취소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계약을 취소할 수 없다. 법률행위 당시 성년 후견인 선임이 필요한 상태에 있었다 하더라도 법원으로부터 후견 개시의 결정을 받지 않았다면,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도 독자적으로 법률행위를 한 것으로 간주된다. 파킨슨병과 치매를 동시에 앓고 있으며 시간, 장소, 사람에 대한 인지기능이 저하된 노인이 한 증여는 물론 만 90세로 치매와 심한 단기 기억장애를 앓고 있는 노인이 한 법률행위에 대해서도 한국 법원은 후견 개시가 없었다는 점을 이유로 취소를 허용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치매 사실을 잘 알고 이를 악의적으로 이용해 중대한 사실을 속였다는 등의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면 사기 등을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사정을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결국 치매나 판단능력 미숙 상태에 있었다는 사유만으로는 계약 취소 사유가 되지 못해 아버지의 계약을 사실상 그대로 이행해야 한다.

반면 아버지가 계약을 체결할 당시 성년후견인이 선임돼 있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후견이 개시된 사람이 후견인의 동의 없이 체결한 계약은 취소할 수 있는 법률행위가 되기 때문에 후견인이 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처럼 성년후견인 선임 여부는 법률행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후견인 선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성년후견인 선임 절차는 시일이 오래 걸리거나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비교적 쉽고 간단하다.

가정법원에 가족관계증명서, 진단서 등을 첨부해 후견인 선임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누구를 후견인으로 선임할 것인지 가족 간에 이견이 없다면 평균적으로 3개월 정도면 절차가 완료된다.

인지대와 송달료 역시 매우 소액이다. 의사의 정신감정 등이 필요한 경우에는 별도의 비용과 시일이 소요되지만 이 역시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한 명의 후견인이 모든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 우려된다면 두 명 이상을 후견인으로 선임할 수도 있고, 후견인 선임 과정에서 후견인의 권한을 일부 제한할 수도 있다.

2018년을 기준으로 치매 환자 수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10%에 이른다. 앞으로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성년후견제도는 판단력이 떨어지는 성인 본인뿐 아니라 그 가족과 재산을 보호하는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한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박현진 미래에셋대우 VIP컨설팅팀 변호사 hyunjin.park@miraeass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