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마크법' 시행 코앞인데…국내 CD금리, EU에 등록 안돼

내년부터 EU의 금융회사들
유럽증권감독기구에 등록된 벤치마크 활용 거래만 가능

1700兆 거래 유럽계 자금, 10개월후 국내서 빠져나갈 수도
관련법 아직 국회 소위 머물러…"이달까지 통과해야 혼란 막아"
마켓인사이트 2월 12일 오후 3시35분

국내 대표적 단기금리 지표인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유럽연합(EU)으로부터 공신력을 인정받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EU가 당장 내년부터 모든 글로벌 금융회사가 유럽증권감독기구(ESMA)에 등록된 벤치마크(기준 지표)를 활용한 금융거래만 할 수 있게 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아직 CD금리를 벤치마크로 등록할 준비가 제대로 안 되고 있어 내년부터 금융시장에 상당한 혼란이 올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규모가 5000조원이 넘는 금리스와프시장의 30%가량이 ‘증발’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마켓인사이트] 5000兆 금리스와프시장 30% '증발' 위기

1년도 안 남은 CD금리 유효기한

EU가 금융시장 벤치마크와 관련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한 것은 2012년 ‘리보(Libor) 조작사건’ 이후부터다. 당시 바클레이즈 UBS 등 12개 글로벌 투자은행(IB)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변동금리 지표로 널리 쓰이는 리보를 조작해 부당한 이익을 챙겼다.

이 사건 이후 EU는 금융시장 투명성 확보를 위해 2016년 벤치마크 산출과 이용 전반을 다루는 ‘벤치마크법’을 제정했다. 이 법이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되면서 EU에 본사를 둔 금융회사는 ESMA에 등록된 벤치마크를 기초로 한 금융거래만 할 수 있게 됐다.

CD금리가 ESMA에 등록되지 않으면 내년부터 유럽 금융회사들은 한국에서 CD금리를 기초로 한 금융상품 거래를 할 수 없게 된다. CD금리는 은행이 자금조달을 위해 투자자를 상대로 발행하는 양도가 가능한 예금증서에 붙는 금리로 금리스와프, 주택담보대출 등 각종 금융거래에서 금리 산정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마켓인사이트] 5000兆 금리스와프시장 30% '증발' 위기

특히 시장 규모가 5594조원(지난해 3분기 말 잔액 기준)에 달하는 금리스와프시장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금리스와프는 금리 변동에 따른 손실 위험을 막기 위해 금융회사끼리 서로 다른 금리 조건을 교환하는 거래다. 주로 변동금리와 고정금리를 교환하는 식으로 거래가 이뤄지는데, 이때 변동금리의 기준이 되는 지표가 바로 CD금리다.

금융투자업계에선 현재 금리스와프시장에서 EU에 본사를 둔 유럽계 은행들의 거래 비중이 전체의 30% 수준(약 1700조원)인 것으로 보고 있다. CD금리가 EU로부터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금리스와프시장이 크게 축소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증권사 관계자는 “서둘러 CD금리를 EU에 벤치마크로 등록하지 않으면 앞으로 10개월 뒤에는 금리스와프시장에서 유럽계 은행들이 한꺼번에 자취를 감출 수 있다”고 말했다.
[마켓인사이트] 5000兆 금리스와프시장 30% '증발' 위기

대응 위한 첫 단추도 못 끼워

CD금리의 ‘유효기간’이 1년도 채 안 남았지만 국내에선 이에 대한 대응이 더디기만 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이 CD금리를 ESMA에 벤치마크로 등록할 수 있는 방법은 △금융지표와 관련해 EU와 한국의 법 체계가 같다는 ‘동등성’ 평가를 받거나 △국내 금융지표 산출기관이 EU 회원국 감독당국의 인증을 받고 EU에 법적 대리인을 두거나 △EU 금융회사가 해당 지표에 대해 EU 규범에 부합한다는 것을 보증하는 세 가지다. 이 중 두 번째 방법은 국내 금융지표 산출기관의 비용 부담이 크고, 세 번째 방법은 EU 금융회사가 보증 부담을 질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금융위원회는 이런 이유로 지난해 10월 EU의 벤치마크법과 성격이 같은 ‘금융거래지표 관리법’을 국회에 발의, 사실상 유일한 대안인 동등성 평가를 통해 CD금리를 벤치마크로 인정받으려는 작업을 시작했다. EU의 동등성 평가를 통과하기 위해선 이 같은 ‘한국 벤치마크법’을 먼저 제정한 뒤 벤치마크 산출기관 내부통제지침과 심사지침, 세부 법안을 담은 각종 시행령 등을 새로 정비해야 한다.

하지만 이 법안은 아직 국회 정무위원회 안건으로도 올라가지 못한 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머물고 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후속 준비에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평가다. 금융위 관계자는 “일단 금융거래지표 관리법을 최대한 빨리 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늦어도 이달에는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문제없이 EU에 CD금리를 벤치마크로 등록할 수 있다”고 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