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C’ 브랜드로 유명한 화장품업체 카버코리아를 2017년 글로벌 화장품 회사 유니레버에 매각해 1조원이 넘는 현금을 손에 쥔 이상록 전 카버코리아 회장이 비상장사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개인 자산관리를 위해 설립한 패밀리오피스 ‘너브’를 통해서다. 투자 영역도 영화제작사, 디자인 회사, 항균필터 회사 등 다양하다.
이 회장처럼 회사를 팔아 수천억원의 거금을 손에 쥔 ‘젊은 거부’들이 자산관리를 위한 패밀리오피스를 잇따라 세우고 있다. 자유로운 투자활동으로 자산을 증식·관리하면서 성장산업 육성에도 기여하기 위해서다. 넥슨 창업자인 김정주 NXC 대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이정웅 전 선데이토즈 대표 등도 패밀리오피스 설립에 나선 대표주자들이다.
20개 회사 공격 투자한 ‘너브’
이 회장은 ‘이보영 크림’으로 유명한 화장품 회사 카버코리아를 사모펀드(PEF) 운용사 베인캐피털과 글로벌 화장품 회사 유니레버에 분산 매각하면서 1조원이 넘는 현금부자가 됐다. 40대 나이에 조단위 부자가 된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렸다. 이 회장의 선택은 패밀리오피스 설립이었다. 네이버와 로펌 등에서 인재들을 끌어모았다.
영화 특수효과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모팩, 브랜드 디자인회사 플러스엑스, 영화배급사 에이스메이커, 영화제작사 B.A.엔터테인먼트, 컨설팅회사 SR컨설팅, 음식 프랜차이즈 표준F&B, 연예기획사 사람엔터테인먼트 등이 모두 너브의 투자를 받은 회사다. 너브는 설립 1년 만에 20여 곳 회사에 약 650억원을 넣은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패밀리오피스는 일반 자산운용사보다 자유로운 투자가 가능하다”며 “제도권 금융회사가 접근하기 어려운 다양한 투자 영역을 개척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 회장은 너브를 통해 2대 주주 지분을 확보한 항균필터 제조사 씨앤투스성진과 함께 합작법인 ‘필트’를 세웠다. 씨앤투스성진의 필터 제작 노하우를 접목해 미세먼지 방지 마스크 사업을 하기 위해서다. 미세먼지 공포가 커졌지만 성능과 디자인을 모두 갖춘 마스크는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카버코리아 매각 후 한동안 은둔했던 이 회장이 경영 재개에 나섰다는 점에서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활력소
패밀리오피스는 1882년 석유왕 록펠러가 세운 ‘록펠러 패밀리오피스’에서 유래했다. 미국의 석유재벌 록펠러 가문을 비롯해 케네디, 빌 게이츠 등 유명 가문은 대부분 패밀리오피스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에선 상위 3000개 패밀리오피스 운용자금이 1조2000억달러(약 1350조원)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대형 증권사·보험사 등이 자산가들의 자금을 맡아 운영하는 ‘멀티 패밀리오피스’를 선보이는 등 시장이 커지는 추세다.
국내 패밀리오피스의 원조는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이다. 그는 케이블TV 회사 딜라이브(옛 씨앤엠)를 팔아 1조원대 거부 반열에 올랐다. 이후 투자회사 에이티넘파트너스를 통해 전문투자자로 변신했다. 에이티넘은 벤처기업과 자원 분야에 활발히 투자하면서 투자업계의 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
한섬을 매각한 정재봉 사장이 세운 개인투자회사 한섬피앤디, 큐릭스를 매각한 원재연 회장이 설립한 제니타스, 박은관 시몬느 회장의 시몬느인베스트도 패밀리오피스로 분류된다.
김정주 넥슨 대표도 넥슨 매각을 추진하면서 본격적인 투자자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유럽 내 투자회사인 NXMH를 통해 명품 유모차 브랜드 ‘스토케’와 레고 거래 사이트인 ‘블랙 링크’를 사들였다. 그는 국내 패밀리오피스를 통해 자금을 운용하는 방안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최근 2020년 은퇴한 뒤 투자활동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국민 게임 ‘애니팡’으로 유명한 선데이토즈를 팔아 부호가 된 이정웅 전 대표도 최근 패밀리오피스 설립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가문의 자금을 운용하는 패밀리오피스와는 다르지만 젊은 거부들이 투자회사를 세워 벤처 육성에 뛰어드는 사례도 늘고 있다. 게임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크래프톤의 장병규 의장은 투자회사 본엔젤스를 세워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초기 자금을 대고 있다.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며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벤처기업)으로 성장한 우아한형제들이 이 회사의 투자를 받았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인 이재웅 쏘카 대표가 자본금 200억원을 넣어 세운 투자회사 옐로우독도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뭉칫돈을 손에 쥔 거부들이 신(新)성장 산업에 돈을 대면서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에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패밀리오피스
패밀리오피스 부호들이 집안 자산을 운용하기 위해 세운 개인 운용사. 운용 규모 최소 1000억원 이상,자산운용사 자선재단 등 다양한 형태를 띤다.
▶마켓인사이트 1월22일 오후 1시36분KG그룹이 매각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동부제철 인수에 나섰다. 하지만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대형 철강사들은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았다.22일 동부제철 채권단 및 KG그룹에 따르면 동부제철 매각주관사인 크레디트스위스와 산업은행M&A컨설팅실이 지난 21일 시행한 예비입찰에 KG그룹 등 복수의 투자자가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KG그룹은 재무적 투자자(FI)와 컨소시엄 형태로 입찰에 참여했다. 다른 참여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매각 측은 예비입찰 참여자들에게 약 2~3주간의 실사 기간을 준 뒤 다음달 중순 이후 본입찰을 할 계획이다. 본입찰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3월 이전에 동부제철의 새 주인이 결정될 전망이다.KG그룹은 지난해부터 6개월에 걸쳐 사업성 검토를 하는 등 동부제철 인수를 준비해왔다. KG그룹은 KG케미칼을 비롯해 KG이니시스, KG모빌리언스, KG 씨에스에너지, KG ETS, 이데일리 등을 거느리고 있다. KG그룹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동부제철 입찰을 꼼꼼하게 준비해왔고 FI와 함께 컨소시엄을 이룬 만큼 자금 부담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동부제철 매각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경영권을 이전하는 방식이다. 인수자는 5000억원가량의 신주 인수로 동부제철 지분 50% 이상을 확보해 당진공장의 열연, 냉연 사업과 인천공장(동부인천스틸)의 컬러강판 등 기타 철강제품 사업 전체를 인수하게 된다. 예비입찰이 이뤄짐에 따라 업계에서 제기된 동부제철 분할 매각 가능성은 낮아진 것으로 평가된다.연 매출 2조5000억원 수준인 동부제철은 매출 기준으로 포스코, 현대제철, 세아그룹, 동국제강에 이은 국내 철강 업계 5위 업체다. 연간 300만t의 열연을 생산할 수 있는 전기로를 비롯해 180만t의 냉연 생산 설비를 갖춘 충남 당진공장과 컬러강판, 형강 등 고부가가치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 인천공장 등을 갖고 있다.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마켓인사이트 1월22일 오후 2시12분인덕·진일·정일 등 중견·중소 회계법인 세 곳이 합치기로 했다. 오는 11월 감사 품질을 높이기 위해 회계법인의 인력과 설비 등 규모에 따라 감사 기업 수를 달리하는 ‘감사인 등록제’ 시행을 앞두고 덩치 키우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22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인덕·진일·정일회계법인은 23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합병 약정식을 한다. 각사 대표와 파트너 등이 참석해 합병 일정 등을 밝힐 예정이다.합병 법인 이름은 ‘인덕진일회계법인’으로 잠정 확정됐다. 오는 3월 출범을 목표로 작업할 예정이다. 합병 법인은 권회승 인덕회계 대표와 남기권 진일회계 대표의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된다.인덕과 진일은 법인이 통째로 합치는 반면 정일회계는 서울 사무소 소속 회계사 전원(30여 명)이 사표를 내고 합병 법인에 다시 입사하기로 했다. 분당 일산 등 지방 사무소는 기존 사명을 내걸고 계속 운영될 것으로 알려졌다.이들 회계법인이 합치기로 한 것은 감사인 등록제에 대비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감사인 등록제가 시행되면 회계사 수가 많을수록 더 많은 기업을 감사할 수 있어 덩치를 불리는 것이 일감 확보에 유리하다. 회계법인은 각각 자산 규모, 회계사 수에 따라 각 5개 군(가~마)으로 구분되는데, 가군 회계법인은 모든 기업을 감사할 수 있지만 다군 회계법인은 가~나군 기업 감사를 맡을 수 없다.회계업계 관계자는 “가군은 회계사 인력이 600명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삼일 등 ‘빅4’만 가능하다”며 “60명이 기준인 다군 회계법인 두 곳이 합병하면 나군(120명 기준)이 되기 때문에 합종연횡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덕·진일·정일을 합치면 회계사 수가 130명가량 된다.지난해 12월 성도회계법인과 이현회계법인, 신승회계법인과 유진회계법인이 각각 합쳤다. 앞서 작년 11월에는 한길회계법인과 두래회계법인이 합병하는 등 회계업계의 몸집 불리기가 잇따르고 있다.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마켓인사이트 1월22일 오후 4시35분“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원방테크 투자는 실패할 리 없다고 믿었습니다.”(정장근 JKL파트너스 대표)사모펀드 JKL파트너스는 2014년 1월 클린룸 전문회사 원방테크의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투자 성격을 ‘대한민국 대표산업에 대한 베팅’으로 규정했다. 클린룸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 정밀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 미세먼지나 이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출입구에 설치하는 공조 설비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장에 없어서는 안 될 설비이기 때문에 두 산업의 성장은 클린룸산업의 성장을 의미했다. 원방테크는 진입장벽이 높은 클린룸 시장을 과점하는 국내 2개 업체 중 하나였다. JKL은 투자 성공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2014년 1월 이 회사 지분 78%를 700억원에 인수한 데 이어, 같은 해 2월 1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신규 자금도 투입했다.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베팅JKL의 투자 시점은 절묘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개인용 컴퓨터(PC), 스마트폰 등의 판매량에 따라 3~4년의 호황기와 1~2년의 침체기를 반복하던 산업이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사이클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글로벌 기업들이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에 대규모로 투자하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산업이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삼성 LG SK 등 한국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기업들의 증설 규모도 차원이 달라졌다. 2016년까지 각각 연간 13조~14조원과 6조원 수준이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증설 규모가 2017년 한 해 동안 30조원과 10조원으로 급증했다.진입장벽이 높은 것도 매력적이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업계의 생명은 속도전. 고객사들은 클린룸 납품 업체를 고를 때 원가 절감보다 품질과 시공 일정을 중요시했다. 원방테크는 약 3만3000㎡ 면적에 수만 개의 오염물질 흡입장비(FFU)를 설치하는 대규모 공사를 6개월 만에 해낼 수 있는 국내 2개사 가운데 한 곳이었다.김용석 JKL파트너스 상무는 “슈퍼사이클이 시작된 이상 원방테크에 확신을 갖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다각화·글로벌화로 가치 끌어올려물론 슈퍼사이클과 과점 구조에만 의존해 저절로 기업가치가 오를 것으로 생각한 건 아니었다. JKL은 세 가지 밸류업 전략을 세워 실행에 옮겼다.먼저 바이오 클린룸(BCR) 전문 시공사인 옵트를 인수해 BCR 시장에 진출했다. 셀트리온과 같은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업체와 한미약품,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의약품 수탁생산(CMO) 기업이 출현하면서 개화기를 맞은 바이오산업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해서였다. 2015년 52억원이었던 옵트의 매출은 2016년 73억원, 2017년 92억원으로 연평균 32%씩 성장하며 원방테크의 가치를 높이는 데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삼성 LG SK하이닉스가 중국과 베트남 등 해외 생산 비중을 늘리자 해외사업도 강화했다. 불투명한 자금관리를 시스템화해 소위 ‘새는 돈’을 막는 대신 성과보상체계는 명확히 했다. 인수 이후 우리사주조합에 지분을 취득할 기회를 줘 직원들과 회사 간 이해관계를 일치시켰다.JKL이 인수하기 전인 2013년 각각 954억원, 67억원이던 원방테크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2017년 1901억원, 181억원으로 2~3배 이상 늘었다. JKL은 지난해 60곳 이상의 인수후보를 접촉한 끝에 6월 자동차 부품업체 NVH코리아에 원방테크를 매각했다. 지분 85%의 매각 가격은 1600억원. JKL은 원방테크에 투자한 지 4년 반 만에 배당 등을 포함해 투자금액의 3.06배를 벌어들였다. 내부수익률(IRR)은 28.47%에 달했다.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