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월13일 오후 3시15분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10월31일 현대자동차의 신용등급(AAA)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2002년 처음으로 ‘AA-(안정적)’ 평가를 받은 이후 오르기만 하던 현대차 신용등급이 16년 만에 하향 조정될 위기를 맞았다. 이 신용평가사는 “현대차의 근원적인 수익 창출력이 떨어졌다”고 등급 전망 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국내 최상위 그룹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에 잇따라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사업환경 악화로 인한 실적 부진으로 기존의 재무안정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에 따른 것이다. 신용평가사들은 올해 자동차와 디스플레이, 조선, 해운, 철강 등 거의 모든 업종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무더기 등급 하락이 현실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모든 업종 '침체 경고음'…기아차·LGD· 롯데쇼핑, 신용 강등 '살얼음판'
부정적 등급 전망 최다

13일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국내 5대 그룹 계열사 가운데 이날 현재 신용등급 전망에 ‘부정적’ 꼬리표가 붙은 회사는 현대자동차와 롯데쇼핑, LG디스플레이 등 모두 12곳이다. 한국기업평가뿐 아니라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가 모두 비슷한 평가를 하고 있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그동안 5대 그룹 계열사의 등급 하향에 소극적이었다. 업황에 따라 채무 상환능력의 부침이 심한 하위 그룹사에 비해 안정적인 이익 기반을 갖추고 있다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들이 관점을 바꿔 5대 그룹 계열사들을 대거 부정적 평가 대상에 올린 것은 국내외 경기 둔화와 경쟁 격화로 최상위 대기업 그룹들의 재무안정성 기반에도 균열이 생겼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경우 2017년 3분기부터 영업이익률이 3%를 밑도는 점 등에 주목했다. 현대차의 신용 전망 하락은 계열사인 기아자동차, 현대캐피탈, 현대카드의 전망 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내 최대 유통업체인 롯데쇼핑 역시 2003년 첫 신용등급 평가 후 처음으로 2017년 9월(한국신용평가 기준) ‘부정적’ 전망을 받았다. 상승만 해왔던 신용등급이 국내 소비 경기 부진 등으로 역주행 위험에 처했다는 분석이다. 한국신용평가에 이어 지난해 11월 한국기업평가도 롯데쇼핑 신용등급(AA+)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췄다. 신용평가사들은 다른 주력 계열사인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제과, 롯데카드 등급에도 ‘부정적’ 꼬리표를 달았다.

SK그룹 산하 민자발전사 SK E&S와 파주에너지서비스는 국내 경기 활력 저하에 따른 전력 공급과잉으로 장기간 고전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이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면서 수익성 악화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다. LG하우시스의 경우 ‘고기능 소재는 중국과 미국의 수요 감소 탓에 적자로 전환하고, 국내 건축자재 시장도 하락 국면에 들어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이들 12개 기업의 신용등급은 전체 20개 등급 중 최상위인 AAA부터 네 번째인 AA-로, 실제 등급이 하락해도 투기등급(BB+ 이하)까지는 7~11단계 남아 있다.

올해 무더기 ‘등급 강등’ 가능성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일제히 올해 기업들이 더 어려운 사업환경에 처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기업평가는 분석 대상 29개 업종 가운데 작년보다 올해 사업환경이 좋아질 업종은 하나도 없다고 보고 있다. 작년 초만 해도 나아질 것으로 예상했던 반도체, 정유, 석유화학 3개 업종의 사업환경도 모두 ‘중립’으로 낮췄다. 올해 사업환경이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한 업종은 분석 대상의 절반에 가까운 13개에 달했다. 자동차, 디스플레이, 조선, 해운, 철강, 건설업종 등이다. 수출과 고용시장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산업 대부분이 포함됐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전체 42개 산업 가운데 반도체와 정유산업 두 업종의 사업환경을 긍정적(우호적)으로 봤지만, 훨씬 많은 15개 업종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나머지는 ‘중립’으로 평가했다.

송태준 한국기업평가 평가기준실장은 “한국 제조업의 위기는 수익성 하락이 아니라 경쟁력 약화에 있다”고 진단했다. 송 실장은 “올해는 주요 산업의 경영환경이 전반적으로 나빠질 것”이라며 “미·중 무역분쟁과 금리 환율 유가 등 거시여건의 불확실성 탓에 경기에 민감한 주요 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병근/이태호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