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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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부지검은 지난 21일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임직원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업비트가 △가짜 계정을 만들어 자산을 예치한 것처럼 조작했고 △254조5383억원 규모 허수주문, 4조2670억원 상당의 가장매매를 했으며 △비트코인 거짓거래를 통해 거래소 회원 2만6000여명에게 총 1491억원을 편취했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는 즉각 입장문을 내고 “업비트는 보유하지 않은 암호화폐를 거래하거나 부당한 이익을 취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검찰이 적시한 기소 혐의는 ‘거래방식에 대한 견해차’라고 했다. 단 가장매매, 즉 자전거래의 경우 거래소 오픈 초기에 마케팅 목적으로 일부 한 적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 역시 시세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 곳곳에서 보이는 검찰의 '고심 흔적'

검찰이 낸 자료를 살펴보면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검찰이 업비트를 압수수색한 것은 지난 5월10~16일이었다. 수사 개시부터 8개월이나 지난 시점에 기소를 결정했다. 재판 절차는 이제 시작이다. 반면 검찰이 함께 공개한 3개 암호화폐 거래소 사건의 경우 수사 개시부터 재판(구공판)까지 2~3개월 소요됐다. 업비트 사건이 이례적으로 오래 걸린 셈이다.

기소가 늦어진 것은 사안이 복잡한 탓이라 쳐도 ‘불구속’인 점 역시 석연찮다. 약 1500억원 상당 편취라는 검찰 발표대로라면 구속 수사가 자연스럽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발표된 혐의와 금액이 사실이라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중범죄인데도 불구속 기소한 대목은 의아하다”고 짚었다.

검찰은 “편취 금액이 크고 다수인을 상대로 한 범행”이라면서도 흔히 따라붙는 “죄질이 나쁘다”란 표현은 쓰지 않았다. 대신 “회원들에 대한 현실적인 지급불능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고, 현재 인지도가 높은 대형 거래소로서 정상 운영되는 점 등을 종합 고려해 불구속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범행에 대한 직접적 판단이 아니라 이후 상황에 대한 언급이라 그렇다. 불구속 사유라기보다는 재판 선고시 정상참작 사유에 어울릴 만한 내용이다.

◆ "허수주문" vs "유동성 공급" 입장차

양측은 사용한 용어부터 달랐다. 검찰은 ‘가장매매’와 ‘허수주문’, 업비트는 각각 ‘자전거래’와 ‘유동성 공급’이라 말했다. 검찰의 표현이 부정적 뉘앙스가 강한 반면 업비트가 고른 용어는 중립적인 느낌을 준다.

가장매매 또는 자전거래란 “동일 가격과 수량의 매수·매도 주문을 동시 제출해 거래가 체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거래소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게 골자. 거래량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악용될 수 있다. 업비트는 허수주문에 대해서도 “매수·매도 호가가 벌어지면 시장가 주문을 낸 투자자들이 의도치 않은 피해를 볼 수 있어 유동성 공급 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비트는 “기술적인 방법”이었을 뿐으로 “엄격하게 분리 관리된 법인 계정”을 사용해 “시세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식”이었다고 해명했다. “거래소 오픈 초기에 마케팅 목적”으로 국한했으며 “자전거래 발행 수수료는 회사 매출로 인식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러나 업계 내부에서도 우선 사죄부터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악의가 없었다 해도 거래소가 직접 플레이어가 되어 블록체인의 본질인 ‘불개입성’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것은 청구권이라 할 수 있다. 암호화폐나 원화 자체를 실제 거래하는 게 아니다. 이처럼 실 계정으로 입금하지 않는 장부상 거래에 대해, 검찰은 사기 혐의를 적용했고 업비트는 ‘절차상 편의’로 해석한 차이가 있었다. 단 후자의 경우도 거래소 장부 기재는 엄밀히 이뤄져야 한다. 기본적으로 자전거래는 하면 안 되며 불가피하게 거래소가 내부 거래를 하더라도 회원과 똑같이 집금계좌·집금지갑을 통해야 ‘임의적 거래’를 피할 수 있단 얘기다.

◆ 규제공백 따른 해석차…'선례' 될 듯

검찰이 고심한 이유도, 업비트가 자전거래라는 일종의 꼼수를 쓴 배경도 결국 규제 공백 문제로 귀결된다. 업비트가 인정한 자전거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서 증권 거래에 대해 금지하는 내부자 거래, 시세조종 또는 부정거래 행위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 암호화폐 거래에 자본시장법이 적용됐다면 구속 기소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실은 다르다.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가 규정되지 않은 데다 거래소에 대한 규율도 없다. 특히 검찰이 문제 삼은 가장매매와 허수주문에 대해 처벌하려 해도 현행법상 근거가 부족하다. 업비트 기소 사유가 전산시스템 조작(사전자기록등위작)과 이를 통한 각종 거래의 운영(위작사전자기록등행사), 회원에 대한 기망 및 대금 편취(사기) 등으로 ‘우회’한 이유다.

따라서 이번 사안에 대한 법적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 관련 법제화나 가이드라인 마련이 요원한 상황에서 업비트의 재판 결과가 향후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어서다. 이미 업비트는 “재판 과정에서 성실히 소명하겠다”며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법적 근거가 다소 불충분해 보이는 검찰의 공소 요지대로 거래소를 처벌할 수 있느냐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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