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11월28일 오후 3시29분

보험사들이 회계상 ‘매도가능자산’으로 잡아놓은 수조원어치 채권을 ‘만기보유자산’으로 재분류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이달 말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시중금리가 오를 조짐이 보이자 채권 평가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다. 평가손실이 커지면 자산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RBC)비율 하락이 불가피하다. 새 보험업 회계처리기준(IFRS17) 도입 시기가 1년 미뤄졌지만 보험사들이 자산건전성 관리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지난 3분기 매도가능자산으로 분류하던 1조2840억원어치 채권을 만기보유자산으로 변경했다.

[마켓인사이트] "채권 평가손실 줄이자"…금리상승 대비 나선 보험사들
매도가능자산은 시가로 평가되기 때문에 평가손익이 곧바로 회계장부에 잡힌다. 금리가 하락하면 채권 가격 상승에 따른 평가이익이 발생하지만 반대 상황에서는 평가손실이 곧바로 반영된다. 이와 달리 만기보유자산은 투자한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취득 원가에 이자수익만 인식하고 회계상 평가손익은 잡히지 않는다.

앞서 한화손해보험도 지난 1분기 2조2019억원어치 채권을 매도가능자산에서 만기보유자산으로 재분류했다. 올초에는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가 매도가능자산으로 잡아놓은 9조5500억원어치 채권을 만기보유자산으로 바꿨다.

이 같은 움직임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IFRS17 도입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IFRS17에서는 보험부채를 시가로 평가하기 때문에 부채 증가에 따른 RBC비율 하락이 불가피하다. 선제적으로 자본을 확충하면서 금리 상승에 따른 채권 평가손실도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한 보험사 최고운용책임자(CIO)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자 보험사들이 보유 채권에서 평가손실이 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매도가능자산 채권 때문에 타격을 받은 경험이 있는 곳일수록 채권 재분류를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내 금융당국이 2022년 도입 예정인 신지급여력제도(K-ICS)가 회계처리 방식에 상관없이 모든 자산과 부채를 시가평가하도록 돼 있다는 점은 변수다. K-ICS가 예정대로 적용되면 보험사들의 채권 재분류 효과는 사라질 수도 있다. 자산과 부채의 만기 불일치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더 많은 요구자본을 쌓도록 돼 있는 점도 부담이다.

에드윈 리우 무디스 연구원은 “채권을 만기보유자산으로 대거 재분류한 상태에서 K-ICS가 도입되면 오히려 금융자산 처분에 제약을 가져와 자산과 부채 간 만기 불일치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