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증권선물위원장(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4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 위반 여부를 심의하는 회의를 마친 뒤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용범 증권선물위원장(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4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 위반 여부를 심의하는 회의를 마친 뒤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적 분식’ 혐의로 초강경 제재를 받게 됐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4월 감리를 시작한 뒤 1년7개월 만에 내린 결론이다. 금융당국이 국내 바이오 간판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분식회계 낙인’을 찍음에 따라 국내 바이오산업 전반의 신뢰가 흔들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물산 합병 당시 공격을 감행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등 ‘삼바 쇼크’가 전방위로 확산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바에 최고 수위 제재

금감원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감리 요구가 거세지자 2017년 4월 감리에 착수했다. 이후 올 5월1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회계처리를 변경한 것에 대해 ‘고의적 분식’으로 판단한 사전조치안을 통보했다.

그러나 회계전문가로 구성된 감리위원회에서 위원 간 의견이 엇갈리며 분식회계 여부를 결론 내지 못했고, 증권선물위원회에서도 금감원 조치안의 논리적 결함을 이유로 회계분식에 대해 재감리를 요청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금감원은 재감리 과정에서 삼성 내부 자료를 입수해 고의성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자료라며 증선위에 제출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증선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금감원 조사 내용 및 증거 자료로 제출된 회사 내부 문건 등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회사가 회계처리 기준을 자의적으로 해석·적용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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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선위가 이날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내린 징계안은 회계처리 기준 위반 건으로는 최고 수위의 제재다. 기존 단일 기업으로는 최대 분식회계(검찰 추산 5조7000억원 분식) 사건으로 기록된 대우조선해양 때보다 과징금이 많고 대표이사 해임권고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정치논리에 휘둘린 회계 문제”

금감원이 2년 만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된 의견을 뒤집은 것도 정치적 압박이 더해진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은 2016년 12월 참여연대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회사를 통해 회사가치를 부풀린 것 아니냐”며 한 질의에 ‘혐의 없음’이라고 회신했지만, 올 5월1일엔 ‘고의적 분식’으로 판정한 중징계 조치안을 회사 측에 통보하면서 180도 입장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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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성’이 확정되면서 다음 감리 수순은 삼성물산이란 관측이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물산과 옛 제일모직 간 합병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회사 가치를 부풀렸다는 금감원의 주장을 증선위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 회계학 교수는 “학계와 회계법인, 감리위원회 등 전문가 집단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국제회계기준(IFRS)상 회계기준 위반 여부에 대한 논란이 컸고, 재감리까지 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애초 답은 (고의 판정으로) 정해져 있었다”며 “기업의 회계처리에 대한 판단이 정치적 논리에 휘둘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감리 내내 여야 국회의원과 시민단체의 성명이 잇따라 발표되는 등 정치적 압박이 강하게 가해졌다는 지적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고의 분식 판정을 내린 증선위 스스로가 검찰 조사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지난 12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과정에서 증선위가 상장 요건을 완화해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해 “구체적인 단서가 확인되면 수사할 것”이라고 답했다.

엘리엇 ISD소송에도 악영향 줄듯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셀트리온과 함께 국내 바이오산업을 대표하는 간판 기업이다. 증선위가 이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가 조작됐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국내 바이오산업 전체의 회계 신뢰도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식시장과 회계감사시장에도 후폭풍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의 평판을 중시하는 해외 기관투자가들이 국내 바이오업체 투자 비중을 줄이고 국내 투자자들도 펀드 환매에 나설 수 있어서다. 회계업계에선 삼성바이오로직스 중징계에 따른 공포로 극도로 보수적인 회계감사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엘리엇이 제기한 ISD도 이번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와 연결돼 있다. 엘리엇은 전임 정부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에 개입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엘리엇이 한국 정부에 청구한 배상액은 7억7000만달러에 달한다. 일각에선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증선위 결과가 엘리엇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빌미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