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물 제조업체 대한방직은 지난달 전북 전주공장(사진)을 1978억원에 처분했다. 이 회사 시가총액(12일 기준 718억원)의 세 배에 가까운 액수다. 대한방직은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일반 면사사업을 접는 구조조정을 하면서 면사 생산을 전담하던 전주공장을 매물로 내놨다. 이 회사 관계자는 “특수사 생산에 집중해 수익성을 개선하고 기존 면사공장은 팔아 차입 부담을 줄여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불황에 몸 사리는 기업들 "돈 되는 건 판다"…사옥·공장까지 매물로
상장사 부동산 매각 줄이어

대한방직을 비롯해 올해 유가증권시장 상장회사가 공시한 부동산 매각물량(예정 포함)은 2조9356억원어치에 달한다. 기업들은 유휴 부지뿐 아니라 공장과 본사 사옥까지 매물로 내놓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5월 서울 광화문 사옥을 4180억원에 매각했다. 삼성물산은 9월 서초 사옥을 팔아 7484억원을 마련했다. 한샘도 신사옥을 이전하기 위해 사둔 서울 문정동 부지 및 건물을 다음달 807억원에 처분하기로 했다.

대기업이 보유 부동산을 내놓으면서 서울 오피스 거래량도 증가했다. 부동산서비스업체 교보리얼코에 따르면 올 1~9월 서울 대형 오피스(연면적 3300㎡ 이상) 거래금액은 총 7조96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5.2% 늘었다.

대기업의 부동산 매각은 경기침체와 금리 인상에 대비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뛴 지금이 ‘매각 적기’라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장기간 들고 있던 주식을 파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7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 6%를 시간외매매 방식으로 처분해 2364억원을 확보했다. 두산중공업도 8월 두산밥캣 지분 10.55%를 매각해 3681억원을 마련했다.

일부 기업은 주요 계열사 경영권을 매물로 내놨다. 대유그룹은 다음달 스마트저축은행을 약 800억원에 팔기로 했다. 금호전기도 6월 루미마이크로(364억원)를 매각한 데 이어 다음달엔 금호에이치티(399억원)를 팔 예정이다.

기업들이 자산을 매각하는 목적은 ‘투자금 마련’보다 ‘유동성 확보’가 압도적으로 많다.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경기하강 가능성에 대비해 적잖은 기업이 투자보다 당장 사업 운영에 필요한 현금을 최대한 손에 쥐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도 ‘변수’

경기 둔화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정부의 지배구조 개편 요구가 커지면서 기업들의 자산 매각은 내년에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말 발표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0.6% 증가해 두 분기 연속 ‘0%대 성장’에 그쳤다. 한은은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9%에서 2.7%로 내렸고 국제통화기금(IMF·2.8%) 한국개발연구원(KDI·2.7%) 무디스(2.5%) 등도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IB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아질수록 기업들은 부진한 사업을 정리하고 주력사업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며 “금융시장에서 자금 조달 및 차입이 여의치 않은 회사는 보유 자산을 처분해 유동성 확보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기국회 심의를 앞둔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도 ‘변수’로 꼽힌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대기업이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자회사 지분율은 기존 20%에서 30%(비상장사는 30%에서 50%)로 높아진다. 보유 자산을 팔아 자회사 지분율을 높이거나 보유주식을 줄여 지분율을 낮춰야 하는 상황이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공시대상 기업집단에서 사익편취 규제 대상으로 분류되는 상장 계열사의 총수일가 지분율을 기존 30% 이상에서 20% 이상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증시와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기업의 자산 매각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업공개(IPO)시장에선 증시 부진에 따른 기업의 상장 철회가 줄을 잇고 있다. 최근 두 달 새 카카오게임즈, CJ CGV베트남홀딩스, HDC아이서비스 등 7곳이 공식적으로 상장 계획을 접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