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정 “자본시장 대수술” >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1일 국회에서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자본시장 혁신과제 당정협의’를 열고 비상장 혁신기업의 자본 조달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홍영표 원내대표, 김태년 정책위의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한정애 수석부의장.  /연합뉴스
< 당·정 “자본시장 대수술” >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1일 국회에서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자본시장 혁신과제 당정협의’를 열고 비상장 혁신기업의 자본 조달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홍영표 원내대표, 김태년 정책위의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한정애 수석부의장. /연합뉴스
당정이 1일 합의한 ‘자본시장 혁신과제’는 비상장 혁신기업의 자금 조달을 전방위로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의 혁신기업은 상장 전까지는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거의 조달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공개(IPO)까지 미국(6.8년)의 두 배가 넘는 14.3년(평균치)을 감내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국내 벤처캐피털(VC)로 치우쳐 있는 비상장사의 자금 조달 루트를 다변화하는 게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상장기업 중심으로 제정된 자본시장법을 전면 개편하기로 한 배경이다.

◆공·사모 조달 모두 쉽게

기업이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공모(50인 이상)와 사모(50인 미만)로 나뉜다. 모든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모 방식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IPO 절차와 다름없는 신고서 관문을 넘는 것이 비상장기업으로선 쉽지 않다. 10억원 미만은 신고서 제출 의무 없이 소액 공모 절차를 통해 조달 가능하지만 한도가 적어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다.

금융위는 비상장사의 소액공모 한도를 30억원 이하, 또는 30억원 초과~100억원 이하로 이원화해 늘리기로 했다. 한도를 높이는 대신 30억원 이하는 기업 허위공시 때 손해배상책임과 과징금을 부과하는 조항이 신설된다. 30억원 초과~100억원 이하의 경우 매년 외부감사 보고서를 제출하는 의무가 추가로 주어진다.

특정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모 발행 요건도 대폭 완화된다. 현재 사모 발행 기준은 ‘50인 미만 청약 권유’로 엄격하다. 금융위는 이를 청약 권유를 한 일반투자자 수와 관계 없이 실제 청약한 투자자가 50인 미만이면 사모로 인정하기로 했다. 전문투자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사모 발행이라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터넷 등을 통한 공개 자금모집도 허용하기로 했다.
사모 발행·소액 공모 문턱 낮추고…전문투자자 최소 15만명 육성
◆개인 5% 이상 전문투자자로

혁신기업에 자금을 댈 수 있는 민간 영역의 ‘자본시장 플레이어’도 확대한다. 전체 개인투자자의 5%가량을 투자 위험을 감수할 능력이 있는 전문투자자로 인정해 이들의 투자 확대를 유도하기로 했다. 전문투자자는 각종 투자자 보호 규제를 받지 않고 기관투자가처럼 손쉽게 투자할 수 있다.

현재 전문투자자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미국에선 개인 전문투자자가 전체의 8.2%(1010만 명)에 이르지만 국내에선 0.007%(1551명)에 불과하다. 전문투자자 등록 요건이 금융투자상품 잔액이 5억원 이상이면서 연소득 1억원 이상이거나 총자산이 10억원 이상인 경우로 까다롭기 때문이다.

내년부턴 문호가 대폭 개방된다. 금융투자상품 잔액 기준을 5000만원 이상(1년 유지)으로 낮추고, 연소득 1억원 이상(부부 합산 1억5000만원 이상)이거나 순자산 5억원 이상으로 낮추기로 했다. 또 금융투자상품 잔액 기준을 충족한 금융투자업 종사자 및 변호사, 회계사, 엔젤투자자, 관련 자격증 소지자 등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도 전문투자자로 인정하기로 했다. 전문투자자 등록도 증권회사가 자체 심사하도록 간소화된다. 박정훈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9만4000명이고, 자격증 관련 금융투자업 종사자는 4만6000명에 이른다”며 “전문투자자 수가 전체 주식투자자의 5%를 넘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2의 스팩’ BDC 도입

혁신기업의 새로운 자금조달 통로로 비상장기업 투자전문회사(BDC)를 도입한다. BDC는 투자 대상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장해 투자금을 모은 뒤 비상장기업과 코넥스기업에 투자하는 투자목적회사다. 증권사, 자산운용사가 설립할 수 있다.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와 비슷하지만 하나의 비상장기업 인수합병(M&A)이 아니라 다양한 비상장기업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박 정책관은 “일반투자자도 BDC를 통해 비상장기업에 쉽게 투자할 길이 열리게 된다”며 “미국처럼 세제 감면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코넥스시장도 코스닥 이전상장 시 질적심사 면제 범위를 확대하고, 시장 참여자 확대를 위해 전문투자자의 대량매매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이 다양한 자산을 유동화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기로 했다. 신용평가를 받지 않은 초기기업에도 자산유동화를 허용하고 기술·지식재산권 등에 대한 담보신탁과 유동화를 허용할 예정이다.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은 “이번 자본시장 혁신과제는 혁신기업이 자본시장을 적극 활용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