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폭락장에서 남몰래 웃음짓는 투자자들이 있다. 코스닥 전환사채(CB)에 투자한 ‘큰손’들이다. 주가가 연일 낙폭을 키우면서 주식으로 바꿀 때 적용하는 주당 전환가격도 뚝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CB 투자자들은 향후 주가가 제자리를 찾으면 낙폭만큼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반면 소액주주 부담은 이중으로 커지게 됐다. CB의 전환가격 하향 조정(리픽싱)으로 나중에 시장에 쏟아질 주식 물량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나중에 코스닥시장이 반등을 시도할 때 CB 주식 전환에 따른 ‘매물 폭탄’이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올해 초 금융위원회의 ‘코스닥 활성화 대책’ 영향으로 급격히 늘어난 CB 발행이 코스닥시장에 악재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급락장서 남몰래 미소짓는 CB 투자자들
◆‘CB 리픽싱’ 사상 최대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지수는 지난 26일 나흘 연속 급락하면서 663.07까지 밀렸다. 최근 4거래일 동안 10.89% 빠졌다. 같은 기간 6.22% 떨어진 코스피지수(2027.15)보다 4.67%포인트 더 내렸다. 지난 1월 말 고점 대비로도 코스피지수는 22.25% 내린 반면 코스닥지수는 28.86% 급락했다. 미·중 무역전쟁 등이 촉발한 증시 급락 상황에서 코스닥시장이 유가증권시장보다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주가 급락으로 코스닥 기업들은 CB 전환가격을 줄줄이 하향 조정하고 있다. 이달 코스닥 기업의 전환가격 조정 공시는 89건으로 집계됐다. 올해 기준으로 694건에 이른다. 통상 상장기업 CB는 ‘리픽싱 조항’에 근거해 발행 3개월마다 시세를 반영해 전환가격을 액면가까지 낮춰준다.

도이치모터스가 지난 4월 발행한 제4회차 CB의 주당 전환가격은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6537원에서 5355원으로 낮아졌다. 이로써 전환 가능 주식 수는 28만 주가량 늘었다. 에이아이비트가 6개월 전 발행한 12회차 CB의 전환가격도 2619원에서 두 차례에 걸쳐 1175원까지 떨어졌다.

코스닥시장에서 CB 발행이 유례 없는 호황을 누리면서 전환가격 하향 조정도 속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코스닥 CB 발행 규모는 현재까지 4조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최대 기록이었던 지난해 규모(3조4972억원)를 이미 넘어섰다.

◆개미들은 울상

금융위원회가 올해 초 코스닥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코스닥벤처펀드를 출범시키면서 CB 투자 수요가 확 늘었다. 회사가 원금을 보장하는 데다 주가가 오르지 않아도 변동성이 커지면 전환가격 ‘리픽싱’으로 수익을 올릴 확률이 높아 큰손들 사이에 인기를 누렸다. 코스닥 기업 대주주들도 투자자로부터 CB 일부를 되살 수 있는 ‘콜옵션’을 보장받아 지분 희석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CB 발행을 꺼리지 않았다.

CB를 가진 ‘큰손’들은 주가 급락으로 기대 수익이 높아졌지만 ‘개미’ 주주들은 울상이다. 지난주 주가 급락을 감안하면 앞으로 전환가격 조정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올해 주가 급락으로 CB 전환가격 건수도 사상 최대에 이를 것”이라며 “사모 CB는 발행한 지 1년이 지나야 주식 전환이 가능해 소액 주주들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코스닥시장이 안정을 찾아갈 때 CB에서 비롯된 ‘폭탄 매물’이 반등을 가로막을 것이란 우려도 많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과도한 CB 발행으로 코스닥 기업 주가를 더 떨어뜨린 측면도 있다”며 “차후 주가가 반등할 때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CB 투자자는 공매도 투자자처럼 주가가 떨어질수록 수익을 볼 가능성이 높다”며 “건전한 주식시장 문화를 위해 CB의 리픽싱 조항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