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0월25일 오후 3시52분

해외펀드 투자자들이 10여 년 전 부당하게 낸 세금 약 3300억원(추정치)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세금 환급을 둘러싼 민사소송이 장기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정부는 1000억원 이상을 가산금으로 내놓을 위기에 놓였다.

25일 국세청과 금융회사들에 따르면 세무당국과 은행·증권사 36곳은 해외펀드 투자자(투자 기간 2007년 6월~2009년 12월)들이 낸 세금을 놓고 6년째 소송(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을 벌이고 있다.

◆부당과세 확실한데…소송 장기화

정부가 한시적으로 역내에 설정된 해외펀드에 비과세 혜택을 주자 많은 개인투자자가 가입했다. 해외펀드 판매사인 은행과 증권사는 외국 기업 주식 투자수익은 비과세, 환차익은 과세 대상으로 계산해 원천징수한 세금을 국가에 냈다.

[마켓인사이트] 해외펀드 투자자에 부당과세한 3300억 환급액 놓고 6년째 소송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증시가 휘청거리고 환율이 급등락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해외펀드가 담은 외국 기업 주식 가치가 폭락해 손실을 입었지만, 환차익이 났다는 이유로 세금을 내야 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처음으로 소송을 낸 개인투자자 김모씨는 일본 펀드에 2억3000만원을 투자했지만 2008년 말 환매 때 1억8500여만원을 건졌다. 이 중 환차익이 1억5000만원이었다. 그는 손실을 봤지만 환차익을 올렸다는 이유로 세금을 내야 했다. 이런 피해자가 수십만 명으로 추정된다.

2012년 1월 서울행정법원이 ‘부당한 과세’라고 판결했고, 은행·증권사들도 7월 국가를 상대로 세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다. 2015년 12월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국가의 잘못된 과세’라고 판단하면서 은행·증권사가 낸 소송 역시 정부 패소로 결론날 게 확실해졌다.

하지만 이 소송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수많은 계좌를 전수분석해 환급액을 확인하는 방대한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마다 펀드 가입일과 환매일이 제각각인 데다 길게는 10여 년 전 일이라 회사당 계산비용만 수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가 패자인 소송

잘못된 과세를 신속하게 되돌리지 못하면서 소송에 얽힌 모두가 패자로 전락했다.

소송이 길어지면서 국가가 부담해야 할 가산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정부가 소송에서 지면 세금 환급은 물론이고 가산금과 원고들의 소송 비용까지 물어야 한다. 매년 가산금만 최대 160억원(원고 전부 승소 가정·연이율 5% 적용)씩 쌓이고 있다. 잘못 과세한 시점부터 가산금을 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면 총액은 1000억원을 넘는다.

은행·증권사도 발을 구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승소해 돌려받을 돈은 고객 몫이므로 회사에는 실익이 없다”고 말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당시 세금을 돌려받을 기약이 없는 해외펀드 투자자를 비롯한 국민이라는 평가다. 국가가 막대한 가산금을 납부하면 국민이 낸 혈세를 낭비했다는 논란이 예상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에서 ‘환급액을 이렇게 계산해 돌려주라’는 유권해석만 내려줬으면 쉽게 마무리됐을 일이 커져 버렸다”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