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또 한 차례 급락했다. 증시 주변 자금이 마르고 거래량이 감소하는 등 한국 증시의 체력이 저하된 탓에 외부 충격에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 등 대외 악재가 해소될 가능성이 희박해 적어도 내년 초까지는 불안한 증시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진단했다. 섣불리 저가 매수에 나서기보단 신중한 투자를 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작은 외부 충격에도 휘청…'약골' 된 코스피, 2100 간신히 방어
◆2차 지지선 2100도 위협

코스피지수는 23일 2.57% 하락한 2106.10으로 마감했다. 1차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주가순자산비율(PBR: 시가총액/자본총계) 1배 2260선은 이미 깨졌고, 2차 지지선인 2100도 장중에 무너졌다. 현재 코스피지수 PBR은 2018년 금융위기 때 수준인 0.88배다.

정다이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현재 코스피지수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이익 전망치가 지금보다 10% 정도 더 내려갈 경우 설명이 될 만한 수준”이라며 “무역분쟁 장기화로 글로벌 경기가 더 크게 둔화될 것이란 경계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날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사적인 자리에서 대중국 관세를 완화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하는 등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미국이 대만과 군사협력을 강화하기로 하고, 중국은 이에 반발해 남중국해에서 군사훈련을 벌이는 등 무역분쟁이 지정학적 분쟁으로까지 번지는 모습에 투자자들이 겁을 먹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이탈리아 재정 문제와 사우디아라비아 사태까지 겹치며 투자자들이 주식을 던지고 안전자산에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고객 예탁금 곤두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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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예탁금도 연중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예탁금이란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에 맡겨놨거나 주식을 판 뒤 찾지 않은 자금으로, 예탁금의 꾸준한 감소세는 증시에서 시중 자금이 이탈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인환 SK증권 연구원은 “고객 예탁금 감소는 대내외 악재로 투자자들이 주식보다는 현금 보유 욕구가 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향후 증시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개인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산 신용융자 잔액도 11조원 밑으로 떨어졌다.

외국인 자금도 계속 이탈하고 있다. 외국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5653억원어치 순매도한 것을 포함해 이달 들어 2조9235억원을 팔았다. 오태동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줄이기로 했고, 국내 공모 주식형펀드 설정액도 24조원대로 1년 전보다 1조원가량 줄었다”고 분석했다.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은 높지만 성장 여력이 줄어드는 점도 외국인이 한국 증시를 멀리하는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김효진 SK증권 연구원은 “한국 기업의 이익은 늘었지만 매출이 정체된 2012~2016년 코스피지수는 박스권에 머물렀다”며 “지금 외국인도 한국 자산이 건전하지만 성장은 미약하다고 인식해 주식은 멀리하고 채권을 순매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스피지수가 2100선 밑으로 떨어지면 조금씩 분할 매수를 해볼 만하다면서도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을 권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분할 매수 한다면 낙폭과대 업종 중 이익이 안정적인 하드웨어, 소재, 산업재가 좋아보인다”고 말했다. 신동준 KB증권 연구원은 “내년 1분기까지는 보수적인 접근이 바람직하다”며 “지금은 현금 비중을 높인 뒤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것을 확인하고 주식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