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무, 증권법 선진화 주도… 윤호일, 공정거래 자문시장 개척
국내 대형 법률회사(로펌)는 1970~1980년 태동기를 거쳐 1990~2000년 폭발적인 성장기에 진입했다. 변호사 개인별로 사무실을 차려 소송을 도와주던 시대가 지나고, 로펌을 설립해 기업별 소송과 자문 등 본격적인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가 열렸다. 로펌 성장기를 이끈 주역들은 주로 사법시험 1~10회 출신이다. 사시 합격자는 2000년대 들어 연간 1000명을 넘은 해도 많았지만 초기 1~10회(1963~1972년)에는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수가 매년 두 자릿수에 불과해 ‘바늘구멍 통과하기’였다.

◆증권법 ‘한 획’ 그은 신영무

로펌은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변호사들이 선진국 로펌을 모델로 설립한 1세대 로펌과 1990년대 이후 이 로펌에서 독립해 세운 2세대 로펌으로 분류할 수 있다. 세종은 김앤장, 광장, 태평양 등과 함께 대표적인 1세대 로펌으로 꼽힌다. 신영무 변호사(사법시험 9회)는 1983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 후배인 김두식 현 세종 대표(22회)와 세종을 설립했다.

신영무, 증권법 선진화 주도… 윤호일, 공정거래 자문시장 개척
신 변호사는 2년간 판사생활을 하다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1977년 예일대로 유학을 떠나 증권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세종을 세운 신 변호사는 국내 증권거래법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최초 해외 전환사채(CB) 발행과 기업 공개매수 자문을 비롯해 금융회사 인수합병(M&A),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서 새로운 절차와 규정을 확립하는 등 세종은 국내 증권거래법 선진화의 길을 터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종은 2001년 송무 분야 강자인 열린합동법률사무소와 합병하면서 로펌 간 첫 합병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후배 길 터준 우창록

1990년대 들어 법률 수요가 급증하면서 로펌업계는 2세대 로펌으로 분화하기 시작했다. 김앤장 출신이 설립한 로펌이 율촌이고 세종 출신이 세운 로펌이 지평이다.

‘법률가 마을’이라는 뜻의 율촌(律村)은 1997년 설립됐다. 김앤장에서 회사법과 조세법 전문 변호사로 활약한 우창록 대표(16회)를 주축으로 김앤장 출신 강희철 변호사(21회), 공정거래·조세 전문가인 윤세리 대표(20회), 한봉희 변호사(26회) 등이 세웠다.

단일 지도체제 아래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점, M&A 없이 성장했다는 점에서 율촌은 김앤장과 조직문화가 비슷하다. 우창록 대표는 김앤장 창립자인 김영무 변호사에 비견되는 카리스마를 자랑한다. 우 대표는 율촌을 20여 년간 압축성장을 통해 ‘1인당 생산성’ 면에서 국내 최정상권에 올려놨다.

그런 우 대표가 지난 11일 율촌 파트너총회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율촌을 영속적이고 특정인에게 종속되지 않는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나부터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됐다”고 설명했다. 율촌은 내년 2월부터 3인 공동대표 체제(윤용섭, 강석훈, 윤희웅 변호사)로 전환하는 ‘세대교체 실험’에 들어간다.

지평은 2000년 4월 세종에서 나온 젊은 변호사 10여 명이 설립했다. 양영태 대표(34회)와 서울대 법대 동기인 임성택 변호사(37회)가 창립을 주도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 변호사(23회)도 합류해 2000년 국내 첫 여성 로펌 대표를 지냈다. 지평은 2008년 법무법인 지성과 합병하면서 국내 10대 로펌에 안착했다. ‘주인의식’과 ‘구성원의 행복’을 강조한 양 대표의 경영철학 덕분에 지평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생에게 인기가 높다. 지평은 로펌 가운데 가장 많은 9곳(베트남 미얀마 러시아 등)의 해외 사무소를 두고 있다.

◆공정거래법 ‘대가’ 윤호일

화우는 2003년 송무에 강한 로펌 화백과 기업 자문에 강점을 지닌 우방의 결합으로 탄생했다. 1989년 우방을 설립한 윤호일 화우 대표(4회)는 1979년부터 10년간 세계 최대 로펌인 베이커앤드맥킨지에서 파트너변호사로 활약했다. 그는 국내 공정거래 법률 자문시장의 개척자로 불린다. 화백은 1993년 고(故) 노경래 변호사(7회)와 부장판사 출신 양삼승 변호사(14회)가 설립했다. 화우 영문명이 윤&양인 것은 이 때문이다. 화우는 2006년 다시 특허 분야에 강점을 지닌 로펌 김·신·유와 합병했다. 두 번의 합병을 거치면서 수평적 조직문화와 폭넓은 개방성을 갖게 됐다는 평가다.

바른은 1998년 판사 출신인 김재호 대표(26회)를 중심으로 홍지욱 변호사(26회), 강훈 변호사(24회) 등이 의기투합해 세웠다. 당시 브로커(사무장)를 고용해 영업하는 잘못된 관행을 깨고 변호사가 직접 영업한다는 의미에서 사명을 ‘바른’으로 지었다. 문성우 전 대검차장(21회·현 바른 대표),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24회), 김용균 전 서울행정법원장(19회) 등 쟁쟁한 ‘전관’들을 영입함으로써 대법원 민·형사사건을 가장 많이 수임하는 로펌으로 알려졌다.

대륙아주는 김대희 대표(28회)가 세운 대륙과 김진한 고문(32회)이 설립한 아주가 2009년 합병하면서 탄생했다. 동인은 2004년 차장검사 출신 이철 대표(15회)와 정충수 전 검사장(13회) 등 변호사 5명이 설립했다. 기여한 만큼 철저히 보상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퇴직한 고위 판·검사들이 재취업할 때 가장 많이 찾는 로펌으로 알려져 있다. 로고스는 2000년 양인평 전 부산고등법원장(2회)과 전용태 전 대구지검장(8회) 등 변호사 12명이 설립해 국내 변호사 116명이 일하는 대형 로펌으로 성장했다. 기업 자문에 강점을 지닌 충정은 1995년 황주명 변호사(고등고시 사법과 13회), 목근수·박상일 대표(23회), 최우영 대표(24회) 등이 주축이 돼 설립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