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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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투자증권은 지난달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제의 중심이 됐다. 이 회사 30대 차장급 직원이 성과급을 포함한 상반기 급여로 최고경영자(CEO)보다 많은 22억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세간에선 ‘샐러리맨 신화’ 탄생으로 큰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회사 내부에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CEO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은 임직원이 나온 지 이미 수년째여서다. ‘확실한 보상을 통해 최고 인재를 확보한다’는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금융투자업계 최장수 CEO로 11번째 연임에 성공하며 한국투자증권을 최고 실적을 내는 증권사로 키워낸 비결도 ‘인재 경영’에 있다는 평가다.

“인재를 위해서라면 아끼지 않는다”

올해로 ‘증권맨’ 30년차를 맞은 유 사장은 늘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증권업이야말로 창의적인 인재 한 명이 회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산업이라는 판단에서다. “최고 인재들이 모여 최고의 성과를 내도록 하기 위해선 파격적인 보상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유 사장이 증권업에 뛰어든 1980년대 후반만 해도 한국 증권사들은 연공서열에 따라 천편일률적인 연봉을 주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직급이 낮으면 적은 연봉을 받아가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 홀세일본부장으로 부임한 2002년 본부를 대상으로 개혁에 나섰다. 유명무실하던 성과급제도를 대폭 개선하고 개인 실적에 따른 차등화도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났다. 적절한 보상의 힘을 확인한 다른 본부들도 이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2007년 47세에 최연소 증권사 CEO가 된 유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최고 인재-최고 성과-최고 대우’를 내걸었다. 현재까지 이어온 그의 경영철학이다. 확실한 보상은 인재를 확보하고 이탈을 막는 효과뿐 아니라 핵심 인재가 되겠다는 의욕을 고취하는 효과가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한국투자증권 임직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업계 최고 수준이다. 임원 평균 근속기간(상무급 이상으로 임원 3년차 이상 기준)은 7.4년에 달한다.

보상이 확실한 만큼 책임도 따른다. 연말마다 한국투자증권 곳곳에서는 탄식이 새어나온다. “올해 목표도 무리다 싶었지만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달성했는데, 내년에는 더 하라고 한다”는 아우성이다. 하지만 연말이 되면 대부분 본부와 부서가 목표치를 채울 뿐 아니라 종종 초과 달성도 한다. ‘도전의식을 끌어낼 수 있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가장 높은 지점’이 유 사장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목표다.

영업 최전선에 있는 CEO

유 사장 본인 또한 최고 인재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이 유 사장을 영입하기 위해 ‘삼고초려’하며 공을 들인 일은 유명하다. 유 사장 영입설이 퍼지자 당시 그가 재직하던 회사 임직원들이 그의 이직을 한사코 반대해 회사를 옮기기까지 6개월 넘게 걸렸다는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 유 사장이 보는 증권맨 최고의 능력은 ‘영업력’이다. 그의 별명인 ‘전설의 제임스’도 그의 탁월한 영업 실적에서 나왔다. 대우증권 영국 런던법인에서 근무하던 1990년대 당시 유 사장의 영문이름은 영화 ‘007’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에서 딴 제임스였다. 전화번호 뒷자리도 007이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라면 007과 같은 정보력으로 뭐든지 제공한다는 뜻이었다. 당시 한국 주식 하루 거래량의 5%가 그를 거쳐 매매되는 기록을 세운 얘기는 지금껏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전설의 제임스는 CEO가 된 뒤에도 여전히 영업의 최전선에 있다. 유 사장은 자신의 일정을 전 임직원에게 공개한다. 일선에서 “이 고객사는 CEO가 직접 만나주면 좋겠다” “이 거래를 성사시키려면 CEO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흔쾌히 수락한다. 그는 늘 “내가 가는 곳, 내가 만나는 사람은 일선에서 결정하는 것”이라며 “내가 승인하기 전이라도 필요하면 내 시간을 예약해서 써 달라”고 주문한다. 이 때문에 유 사장의 일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꽉 차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경쟁사 임직원들은 “한국투자증권의 가장 강력한 힘은 말단 직원부터 CEO까지 모두 다 영업맨을 자처한다는 점”이라고 평가한다.

영업이익 1조원 달성을 향해

유 사장이 이끄는 한국투자증권은 증권업계 최상위권 실적을 이어왔다. 올 상반기 영업수익 4조1764억원에 영업이익 3782억원, 순이익 2873억원을 내며 업계 선두권을 달렸다. 지난해에도 영업수익 6조2005억원에 영업이익 6860억원, 순이익 5254억원을 올렸다. 순이익과 자기자본이익률(ROE) 기준으로 1위를 하지 못한 해가 드물다. 증권업계에서는 한국투자증권이 올해 영업이익 8000억~9000억원을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유 사장의 단기 목표 중 하나는 한국 증권사들의 꿈인 ‘영업이익 1조원 달성’이다. 지금까지 국내 증권사 중 연간 영업이익 1조원을 넘은 곳은 없다. 그는 이른 시일 안에 한국투자증권이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브로커리지(주식 위탁매매)뿐 아니라 부동산금융, 기업금융, 개인자산관리 등 금융투자 관련 전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모회사인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카카오와 손잡고 세운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와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 중 지난해 최초로 초대형 투자은행(IB) 인가를 받아 시작한 발행어음사업도 든든한 수익원이다.

아시아 금융시장 진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2010년 50위권이던 베트남 현지 증권사를 인수해 세운 KIS베트남은 자기자본 기준 7위로 성장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외국계 증권사 중 이익 등에선 1위로 꼽힌다. 지난해 인수한 인도네시아 단팍증권사를 모태로 하는 KIS인도네시아는 현지 5위권 증권사로 키워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인도네시아 현지 자산운용사도 조만간 인수할 계획이다.

■유상호 사장 프로필

△1960년 경북 안동 출생
△1985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85년 한일은행 입행
△1988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경영학 석사(MBA)
△1988년 대우증권 입사
△1992년 대우증권 런던현지법인 부사장
△1999년 메리츠종금증권 전략사업본부장
△2002년 동원증권 홀세일본부장
△2006년 한국투자증권 기획총괄 부사장
△2007년 한국투자증권 사장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