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7월24일 오후 3시45분

[단독] 피부과 의사가 만든 화장품 '제2의 스타일난다' 되다
피부과 의사 출신 안건영 대표가 세운 고운세상코스메틱이 스위스 최대 유통기업 미그로스그룹에 팔린다. 프랑스 로레알의 ‘스타일난다’ 인수를 계기로 K뷰티의 잠재력에 주목한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화장품업체에 잇달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2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안 대표는 화장품 브랜드 닥터지(Dr.G)로 알려진 고운세상코스메틱 보유 지분(특수관계인 지분 포함) 51%를 미그로스그룹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가격은 약 300억원으로 알려졌다. 미그로스그룹의 화장품 원료 전문 자회사인 미벨AG가 인수 주체로 25일 본계약을 맺는다.

피부과 전문의인 안 대표는 고운세상피부과의원 대표원장이다. 피부질환 전문의로 쌓은 노하우를 화장품 사업으로 연결하기 위해 1999년 고운세상코스메틱을 설립했다.

미그로스가 고운세상코스메틱을 인수하는 것은 중국 화장품 시장 공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IB업계 관계자는 “중국 진출이 지상과제인 글로벌 기업에 한국 중소형 화장품회사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인수 대상”이라며 “고운세상코스메틱에 이은 제3, 제4의 스타일난다가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독] 피부과 의사가 만든 화장품 '제2의 스타일난다' 되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은 안건영 대표(사진)의 이름 가운데 글자 이니셜을 딴 자체 화장품 브랜드 ‘닥터지(Dr.G)’로 유명한 업체다. 닥터지의 선크림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상품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국내에서는 CJ올리브영, 이마트 트레이더스, AK플라자, 부츠, CU를 통해 보습 제품과 트러블 완화용 화장품 등을 팔고 있다. 중국에서는 왓슨스와 매닝스, 미국에서는 월마트와 노드스트롬 등에 입점해 있다.

지난해 매출(연결기준)은 287억원, 영업이익은 21억원이었다. 전체 매출의 절반을 해외에서 벌어들인다. 화장품의 천국이라는 홍콩에서 가장 큰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08년 말에는 국내 피부과 화장품으로는 처음 100만달러 수출탑을 받기도 했다.

포천 500대 기업 중 하나인 유럽의 ‘유통 공룡’ 미그로스가 고운세상코스메틱을 인수하는 건 유통망에 ‘피부전문 자체상표(PB)’ 품목을 확대하는 동시에 중국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미그로스는 스위스와 인접국인 리히텐슈타인, 프랑스 남동부 지역의 최대 유통회사다.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편의점 등 1098개에 달하는 유통 채널에 은행 신용카드 등 금융 계열사도 거느리고 있다. 90개 자회사를 통해 화장품부터 생활용품, 전자제품, 주유소, 서점까지 2만 개에 달하는 PB 상품을 보유해 세계 최대 PB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사회적 책임을 중시해 협동조합 형태를 유지하고 술·담배를 팔지 않으며 공정가격 운동을 벌이는 회사로도 유명하다. 스위스 인구 720만 명 가운데 200만여 명이 미그로스 협동조합 회원이다.

미그로스도 로레알 유니레버 등 글로벌 화장품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중국 화장품 시장을 뚫으려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들이 유독 중국 시장에서 맥을 못 추는 건 ‘기획→개발→생산→마케팅’ 등 제품 출시 전 과정을 정형화된 시스템에 따라 진행하다 보니 중국 젊은 여성층 특유의 복잡한 취향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 화장품 업체는 대부분 종업원 50~100명의 중소기업이지만 이웃나라 중국 여성의 트렌드를 잘 포착해 발 빠르게 대응하는 데 강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기업들이 수십 개의 자사 브랜드로 제품을 융단폭격하듯 시장에 푸는 것과 달리 마스크팩, 아이크림 등 특정 상품에 집중해 탄탄한 현지 판매망을 구축한 것도 매력이다. 고운세상코스메틱 브랜드 닥터지도 중국 법인을 설립한 뒤 ‘피부과 의사가 개발한 피부특화 상품’이란 기치를 내세워 인지도를 높였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