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7월23일 오전 9시36분

‘덩치’를 키워 기업 신용공여 업무 인가를 받은 대형 증권사들이 순자본비율(NCR) 관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모사채 인수를 주요 신용공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인수한 채권 전액이 자본에서 차감되는 리스크(위험)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증권사들이 건전성을 사수하면서 ‘모험자본 공급 활성화’라는 정부의 인가 취지를 살리기 위해 기업금융까지 적극 확대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켓인사이트] 대형 증권사, NCR 관리 '골머리'
◆한국투자증권 NCR 급락

현재 기업 신용공여가 가능한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증권사는 미래에셋대우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메리츠종금증권이다. 이 중 한국투자증권의 1분기 말 기준 NCR은 1035.9%로 지난해 말(1469.9%)보다 434.0%포인트 떨어졌다.

한국투자증권의 NCR이 3개월 만에 크게 하락한 핵심 원인은 기업 신용공여 증가다. 기업여신은 손실 발생 가능성을 감안해 일정 비율이 위험액으로 인식된다. 이는 NCR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사모사채 등 한국투자증권의 기업금융 관련 여신을 나타내는 건전성 분류 대상 채권 규모는 이 기간에 6조7418억원에서 7조8899억원으로 늘었다. 2016년 말(4조5243억원)과 비교하면 3조원 이상 증가했다.

특히 사모사채 인수 규모가 늘어난 게 NCR 하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2010억원이었던 한국투자증권의 사모사채 인수 규모는 지난 1분기 말 6158억원으로 증가했다.

◆커지는 회계처리 논란

증권사가 사들인 사모사채는 NCR 산정 과정에서 모두 자본에서 차감된다. 똑같이 회계상 대출채권으로 반영되는 대출금은 1.6~12.0%만 위험액으로 인식된다. 금융당국이 사모사채에 대해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인수 규모를 제한하는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대출금은 자기자본의 100%(9월부터는 200%로 확대)를 넘길 수 없다. NCR을 산정할 때 사모사채를 대출금과 똑같이 다루면 부실기업들까지 사모사채 발행을 대거 늘릴 가능성이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논리다.

증권업계에선 과도한 규제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사모사채가 자본에서 차감되는 비율을 낮추지 않으면 증권사들이 모험자본 공급을 위해 기업여신을 확대하는 데 적지 않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증권업계 주장이다.

◆사모사채 시장에 몰리는 중소·중견기업

중소·중견기업 대부분은 신용도가 투기등급 수준이기 때문에 공모 회사채를 찍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제공할 담보가 마땅치 않아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든 중소·중견기업으로선 사모사채 발행이 위축되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최근 2년여간 증권사들의 대형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기업들의 사모사채 발행 규모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2016년 2조5629억원이던 사모사채 발행금액은 지난해 4조5066억원으로 급증했다. 올 상반기 발행금액(2조8550억원)도 전년 동기보다 23.6% 늘어나는 등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