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를 지향하는 글로벌 자산운용사 템플턴자산운용이 대림산업 삼성중공업 세방전지 코스메카코리아 등 보유 주식을 대거 정리하고 있다. 외국인투자자가 올 들어 3조4500억원가량을 순매도한 가운데 템플턴도 저평가 매력이 여전한 종목들을 처분하자 증권업계는 외국인에게 한국 증시의 매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가치투자 名家' 템플턴, 한국 비중 줄이나
◆‘저평가주’ 대림산업 대거 매도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템플턴은 5월부터 지난달 26일까지 44차례에 걸쳐 대림산업 주식 43만2051주(지분 1.24%)를 368억원에 처분했다. 주당 매각가격은 8만5358원이다. 템플턴은 이번 매각으로 대림산업 지분이 5.24%에서 4%로 줄었다. 이 운용사가 보유한 대림산업 지분이 5%를 밑돈 것은 2016년 8월 이후 약 2년 만이다.

템플턴의 지난해 3월 말 기준 운용자산은 7400억달러(약 825조9880억원)에 이른다. 이 회사는 현금 창출력이 우수하고 실적 대비 주가가 저평가된 가치주를 담아 장기 보유하는 투자전략으로 유명하다. 대림산업은 템플턴 투자전략에 잘 맞는 종목으로 꼽혀왔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 회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시가총액/자본총계)은 0.57배로 주가가 청산가치의 절반 수준이다.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이익)도 4.80배로, 업종 평균(16.34배)을 크게 밑돈다.

템플턴은 지난달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세방전지 주식 17만413주(지분 1.22%)를 54억원에 처분했다. 보유지분이 5.5%에서 4.28%로 줄었다. 이 회사 보유지분이 5.0%를 밑돈 것은 2014년 10월23일 이후 4년여 만이다. 세방전지는 자동차 축전지를 생산하면서 지난해 매출 1조1110억원, 영업이익 698억원을 올렸다. PBR은 0.49배에 불과하다.

화장품 업체인 코스메카코리아 지분도 정리하고 있다. 템플턴은 작년 8월 이후 코스메카코리아 투자를 꾸준히 늘려 지난 3월29일 지분율이 8.01%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4월부터 물량을 처분하기 시작해 현재는 6.32%로 줄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1823억원, 영업이익 109억원을 기록했다. PER은 22.44%로 업종 평균(44.03%)의 절반 수준이다. 템플턴은 올해 2월부터 3월 말까지 삼성중공업을 꾸준히 매각해 보유 지분을 5.13%에서 3.10%로 줄였다.

◆발 빼는 이유는

템플턴이 대림산업을 비롯해 보유주식을 파는 것을 놓고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심상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들이 본격적으로 국내 주식시장에서 발을 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외국인은 올해 1월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9756억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했다. 하지만 2월부터 지난달까지 매달 순매도에 나서 이 기간(2~6월) 동안 5조7376억원어치를 팔았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한국 정부의 정책 방향이 시장친화적이지 않다는 우려가 외국인투자자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며 “정책 리스크가 커진 한국에서 대만으로 외국인 자금이 이동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기업 펀더멘털(기초체력)도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올해 영업이익은 작년보다 12.1%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영업이익 증가율 전망치 37.9%)와 프랑스 CAC40지수(23.6%) 편입 기업보다 낮다.

거시경제 지표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국내 기업의 설비투자가 올해 5월까지 석 달 연속 감소했고, 소비 지표인 소매판매도 두 달 연속 줄었다. 박상현 리딩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최근의 증시 하락은 미국과 중국 간 무역갈등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예상보다 충격이 큰 것은 근본적으로 국내 경기 흐름이 부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익환/마지혜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