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국내 주요 정보기술(IT) 기업 지분을 잇따라 늘리고 있다. 이번엔 LG그룹 계열 반도체 설계회사(팹리스)인 실리콘웍스 지분을 5% 이상 취득해 3대 주주로 올라섰다. 지난 5월 LG전자SK하이닉스 지분을 늘린 데 이어 세 번째다.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 관련 종목이 주목받으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국내 IT기업에 돈이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최대 운용사 블랙록, 한국 IT株 사 모은다
◆실리콘웍스, LG그룹 반도체사

블랙록 펀드 어드바이저스 등 블랙록 계열 투자회사 네 곳은 실리콘웍스 주식 83만3753주(지분율 5.13%)를 들고 있다고 7일 공시했다. LG(33.08%), 템플턴자산운용(5.40%)에 이어 3대 주주다. 평균 매수 단가는 4만675원으로 7일 종가(4만500원)보다 높다. 블랙록의 지분 확대 소식에 이날 코스닥시장에서 실리콘웍스는 2700원(7.14%) 오르며 마감했다. 블랙록은 지분 취득 이유에 대해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혔다.

실리콘웍스는 LG그룹 내 유일한 반도체 회사다. 반도체 수요가 커지는 것과 함께 그룹 내 위상도 높아지고 있어 장기적인 전망이 밝다는 게 증권가의 평가다. 지난달 29일엔 LG전자로부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티콘칩 사업을 넘겨받았다. 티콘은 디스플레이 패널에 들어가는 시스템 반도체다. 반도체업계에선 LG그룹이 실리콘웍스를 통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제조업체)를 인수해 19년 만에 다시 반도체 직접 생산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다. 김철중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실리콘웍스는 LG그룹 자동차 전장 사업과 배터리 관리·제어와 관련한 반도체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IT주에 관심 높이는 외국인

올해 초 삼성엔지니어링과 녹십자셀,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늘렸던 블랙록은 5월 이후엔 IT기업 지분을 계속 늘리고 있다. 블랙록은 이날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7.31%에서 3.81%로 줄였다고 공시했다. 올 들어 40% 넘게 오른 삼성엔지니어링의 추가 상승 가능성을 낮게 본 것이란 관측이다.

반면 지난달 SK하이닉스 지분율은 5.08%, LG전자는 5.04%로 늘렸다. 보유 지분 가치는 현재 각각 3조3617억원과 7473억원에 이른다. 유동원 키움증권 글로벌전략팀장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전기차 등 4차 산업혁명 수혜주를 찾아 글로벌 투자자금이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고 주가가 싼 국내 IT기업에도 이들 자금이 들어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삼성전자 주식 270만 주를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할 때 전날 종가 대비 할인율이 1.5%에 그쳤던 것도 외국인투자자가 몰렸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할인율은 거래 규모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이상의 블록딜 기준으로 한국에서는 2010년 이후, 아시아·태평양에서는 201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증권가에선 하반기 IT가 다시 주도주로 떠오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실적은 좋은데 주가가 많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정보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올해 예상 실적 기준 자기자본이익률(ROE: 주당 순이익/주당 순자산)이 36.5%에 이르지만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주당 순이익)은 4.5배에 불과하다. 보통 ROE가 높으면 주가도 올라 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주당 순자산)이 높게 나타난다. 삼성전자도 ROE가 21.8%지만 PBR은 1.4배, PER은 7.6배 수준이다.

신중호 이베스트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글로벌 증시에서 나타나는 기술주 강세를 보면 외국인투자자들이 IT주에 관심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며 “국내에서도 IT주 상승세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임근호/김병근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