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주주에 불리한 전환사채(CB)가 사모 방식인 3자 배정으로 무분별하게 발행되고 있어 주주보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CB는 투자자에 리픽싱(전환가액 하향 조정) 등 유리한 조건을 부여해 기존 주주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CB는 기존 주주를 대상으로 하는 공모가 아니라 ‘큰손’을 대상으로 하는 사모로 발행된다. 기존 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3자 배정 배제’ 원칙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사모 방식이 대주주와 큰손,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코스닥시장이 갈수록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CB발행 99%가 사모… '그들만의 코스닥' 변질
◆공모 CB 3건 불과

27일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시장에서 지난해 이후 발행된 CB 발행건수 603건(5조7113억원) 가운데 공모 발행은 3건(130억원)에 불과하다. 약 5조7000억원을 사모펀드나 투자조합, 개인 큰 손 등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3자 배정 방식으로 조달했다.

3자 배정 방식의 자금조달은 주당가치 희석 등 기존 주주이익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 CB는 만기 시 원금과 이자를 보장하고, 주가가 내리면 전환가격을 리픽싱하는 조건까지 붙어 있다. 유상증자보다 기존 주주들에게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코스닥 한계기업들도 3자 배정 방식의 CB 발행으로 거액을 조달하고 있다. 지난해 이후 시가총액 500억원 미만인 코스닥 기업 94곳이 사모 CB를 발행해 6204억원을 조달했다. 이 기업들의 시총 합계의 32.90%에 이르는 규모다.

상법 418조에서 규정하는 기존 주주의 신주 배정권리가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법은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회사 정관에 따라 예외적으로 사모 방식을 허용하고 있다.

코스닥 기업들은 3자 배정으로 거액을 조달할 수 있도록 정관을 바꿔 조달 근거를 마련해놓고 있다. 시총 1000억원도 안되는 A사는 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한도를 각각 1조원으로 설정해놨다. B사는 발행주식총수를 현재보다 10배 이상 많은 10억 주로 정해놨다.

미국에선 상장 규정을 통해 전체 주식 수의 20%를 초과하는 신주를 3자 배정으로 발행하려면 주총에서 주주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사회 결의만으로 가능하다. 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관계자는 “CB 조달 금액이 회사 규모와 비교해 지나치게 큰 기업들은 투자자와 대주주의 연관성 등을 집중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팔짱만 낀 금융위

코스닥의 CB 발행 규모는 기업공개(IPO) 공모금액을 크게 웃도는 수준까지 커졌다. 지난해 코스닥 IPO기업의 공모금액은 3조761억원 수준이었다. 시장에선 ‘모험자본 육성’ 정책의 부작용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금융위는 수년째 펼쳐온 ‘모험자본 육성’ 정책을 통해 시장 활성화를 꾀했다. IPO 문턱을 낮추고, 모험자본 투자저변을 넓히는 정책을 펼쳐왔다.

올해 초에도 코스닥 벤처펀드 도입과 성장성 위주의 상장 요건 개편을 뼈대로 하는 코스닥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한 운용사 대표는 “‘부자펀드’ 논란을 불러왔던 코스닥 벤처펀드 논란은 코스닥의 본질적인 문제를 단편적으로 드러낸 것일 뿐”이라며 “공모펀드 부진도 결국 CB 과열 현상과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코스닥시장이 개미들에게 불리한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우려가 안팎으로 높다”며 “모험자본 육성 정책이 결과적으로 코스닥시장을 벤처캐피털의 ‘테스트베드’(시험 무대)로 만든 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원활한 자금조달을 원하는 대주주와 안정적으로 위험자산에 투자하고 싶은 투자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CB 발행이 늘어나고 있다”며 “특별한 문제로 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