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증시에서 남북한 경제협력주로 거론되던 주요 종목들의 시가총액이 4조원 넘게 사라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열릴 예정이던 미·북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밝힌 데 따른 영향이다. 이날 개인투자자는 남북경협주를 팔며 차익실현에 나선 반면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는 낙폭이 큰 남북경협주를 순매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변준호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시간이 걸릴 순 있지만 미·북 정상회담 재개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며 “그동안 갑작스레 많이 올라 남북경협주를 담지 못했던 외국인과 기관이 이날 조정을 매수 기회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남북 경협株 무더기 급락… 하룻새 시총 4兆 이상 사라져
◆외국인 기관은 남북경협주 매수

이날 코스피지수는 5.21포인트(0.21%) 내린 2460.80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지수는 4.97포인트(0.57%) 하락한 868.35에 마감했다. 남북경협주 급락에 트럼프 대통령의 수입차 관세 부과 검토 지시로 자동차주가 약세를 보이면서 코스피지수는 장 초반 1% 넘게 하락했다. 하지만 외국인과 기관 매수세가 유입되며 낙폭을 줄였다. 이날 외국인은 3340억원, 기관은 1206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남북경협주가 약세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실적과 성장동력을 보유한 업종의 강세가 나타났다”며 “외국인과 기관은 반도체 등 정보기술(IT)주와 바이오주를 집중적으로 매수했다”고 말했다.

미·북 정상회담 취소로 남북경협주는 이날 일제히 급락했다. 주요 50개 남북경협주 시가총액은 전날 34조2751억원에서 이날 30조471억원으로 4조2280억원 줄었다.

현대건설은 9.8% 하락하며 시가총액이 7350억원 줄었고, 현대로템도 19.2% 떨어지면서 시가총액이 5650억원 증발했다. 16.8% 떨어진 현대엘리베이터(-4747억원)와 8.9% 하락한 쌍용양회(-2922억원)도 시가총액 감소폭이 컸다. 남북경협주 중에서 LS산전 서호전기 현대정보기술 선광 등은 5~6%대 하락에 그쳤지만 혜인 특수건설 대호에이엘 세명전기 부산산업 일신석재 등은 20% 넘게 내렸다. 하인환 SK증권 연구원은 “상당수 남북경협주가 실체 없이 기대만으로 올랐다”며 “회담 취소가 없었어도 언젠가 조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이날 소식이 투자심리를 흔들면서 급락세를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회담 재개 가능성은 열려 있어”

상당수 증권업계 전문가는 미·북 정상회담 취소에 따른 단기 충격이 불가피하지만 ‘남북 경협’이란 테마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은택 KB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미·북 정상회담은 결렬됐다기보다 연기됐다고 보는 것이 맞다”며 “단기적으로 남북경협주에 대한 차익실현 매물이 나올 수 있지만 건설과 기계 등 장기적으로 수혜가 예상되는 종목은 재매수를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에 쓰던 트위터 대신 공개 서한으로 정상회담 취소를 알리고, 김정은을 언급하며 ‘각하’라는 호칭을 썼으며, 인질 석방에 대해 감사를 표한 것으로 볼 때 미·북 정상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은 아직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장열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변덕스러운 행동으로 나서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형적인 협상 방식”이라며 “지금 양측이 수싸움을 벌이는 것일 뿐 회담이 완전히 틀어진 것은 아니다”고 봤다.

외국인과 기관이 급락한 남북경협주를 사들인 것도 회담 재개를 대비한 포석이란 분석이다. 외국인은 이날 현대건설을 521억원, 대우건설을 96억원, 현대로템을 72억원어치 사들였다. 기관도 현대건설을 123억원, 쌍용양회를 75억원어치 순매수했다.

김세련 SK증권 연구원은 “경의선과 동해선, 개성공단 등 남북한 정상회담 때 확정된 경협 프로젝트의 사업 금액은 약 30조원으로 국내 1년치 토목 수주액에 맞먹는다”며 “향후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가장 크게 혜택을 볼 업종은 건설”이라고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