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시장에서 전환사채(CB) 발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건 정부의 ‘모험자본 육성’ 정책과 맞물린다. 금융위원회가 잇따라 내놓은 벤처기업과 사모펀드 지원책이 메자닌(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시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코스닥시장 규모를 감안할 때 전체 CB 발행액이 비정상적으로 많다는 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해외 시장과 비교해도 국내 메자닌 발행시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르게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크다. CB는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으로 바꿀 때 적용되는 전환가액을 낮춰 조정(리픽싱)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서다.
헤지펀드·큰손·상장사 '전환사채 커넥션'… 소액주주만 전전긍긍
헤지펀드가 ‘CB 기폭제’

국내에서 메자닌 발행이 본격화된 건 12년 전인 2006년이다. 초기엔 신주인수권부사채(BW) 시장 중심으로 인기를 모았다. 2013년 8월 대주주 편법 승계 문제가 논란이 돼 분리형 BW 발행이 전면 금지되면서 관심은 CB로 옮겨졌다.

코스닥시장의 메자닌 발행 규모는 2015년까지만 해도 1조원 수준에 머물렀다. 메자닌 규모가 급격하게 커진 건 2016년부터다. 금융위가 2015년 10월 헤지펀드 진입 문턱을 낮춰준 것이 계기가 됐다. 금융위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헤지펀드 운용업 진입 규제를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완화했고, 최소 자기자본 기준도 60억원에서 20억원으로 낮췄다. 현재 헤지펀드 운용사는 136개, 운용자산은 32조2000억원에 이른다.

헤지펀드들은 최소 가입금액 1억원 이상의 자산가 자금을 모아 CB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사모 CB는 보호예수 기간 1년이 지나면 일반 주식과 똑같이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을 누릴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채무 불이행(디폴트)만 피하면 주가 하락 때도 원금에 이자까지 받을 수 있다.

상장기업은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 대신 CB를 발행해 자금을 손쉽게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큰손’ 투자자도 모험자본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코스닥 CB와 BW 발행 규모는 2015년 1조8320억원(232건)에서 2017년 3조6363억원(410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메자닌을 주요 운용자산으로 삼는 코스닥벤처펀드까지 도입되면서 벌써 발행 규모가 2조4692억원(229건)에 이른다. 작년보다 두 배 빠른 속도다. 현 추세로 보면 올해 6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서만 기형적 팽창

국내와 달리 미국 증시에선 CB 발행이 감소하는 추세다. 라이노스자산운용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933억달러(약 101조원)에 달했던 미국 증시 상장사의 CB 발행액은 지난해 315억달러(약 34조원)로 급감했다. 이 기간 유럽 증시 상장사의 CB 발행액도 348억달러(약 37조원)에서 226억달러(약 24조원)로 35%가량 줄어들었다.

미국 상장사의 CB 발행액이 전체 주식시장 시가총액(약 21조달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0.15%에 불과하다. 반면 올해 코스닥의 CB 발행 규모는 전체 코스닥 시가총액(284조3420억원)의 2%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김형호 한국채권투자자문 대표는 “미국은 CB 발행사의 주가 하락에 따른 전환가 조정 조항이 없고 전환가가 현재 주가보다 높게 발행되기 때문에 한국처럼 CB 인기가 높지 않다”고 말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CB 수요 증가에 따라 신용도 낮은 기업들이 CB 발행을 통해 자금 조달을 늘리다 보면 결국 디폴트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며 “최근 사모로 발행되는 CB는 관련 공시나 기존 투자자 보호 장치가 미흡해 보완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조진형/하헌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