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업종을 담당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매일 새벽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주가 동향부터 살핀다. 국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의 약 23%를 차지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가 마이크론에 연동되는 일이 많아서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마이크론이 올해 실적 전망을 상향 조정하고 100억달러(약 10조7000억원)의 자기주식 매입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내 반도체주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다음 타자’로는 SK하이닉스가 유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반도체 슈퍼호황 계속된다"… SK하이닉스, 최고가 경신
◆현금 넘치는 반도체 기업들

SK하이닉스는 23일 유가증권시장에서 6200원(6.96%) 오른 9만5300원에 마감했다. 사상 최고가다. 지난 3월19일 세웠던 장중 기록(9만1500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외국인이 3008억원어치를 순매수하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이날 SK하이닉스 한 종목에 몰린 돈이 유가증권시장 전체 순매수 금액(2754억원)보다 많았다. 삼성전자도 1800원(3.60%) 상승한 5만1800원에 장을 마쳤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공격적인 매수세는 마이크론의 실적 전망 상향과 자사주 매입 계획을 통해 ‘반도체 슈퍼호황이 올해도 지속될 것’이란 확신이 생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마이크론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애널리스트, 투자자 초청 행사에서 올해 3분기(3~5월) 매출 전망치를 기존 72억~76억달러에서 77억~78억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전날 뉴욕 나스닥시장에서 마이크론은 6.40% 급등했다.

전문가들은 마이크론의 발표에 시사점이 많다고 봤다. 정창원 노무라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이익 사이클이 뚜렷한 반도체산업은 돈을 많이 버는 시기에도 설비 투자와 비수기 부담이 컸다”며 “삼성전자에 이어 마이크론이 적극적인 주주환원에 나선 것은 반도체 호황 장기화로 과거와 달리 지속적인 현금창출이 가능하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마이크론의 바통을 이어받을 것으로 봤다. 이 연구원은 “SK하이닉스는 설비 투자와 법인세를 감안해도 앞으로 4년간 30조원 이상의 잉여 현금흐름이 발생할 것”이라며 “쌓여가는 막대한 현금이 주주환원으로 이어지면 극심한 저평가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실적을 기준으로 한 SK하이닉스의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이익)은 4.6배로 마이크론(5.6배)보다 저평가돼 있다. 반면 작년 영업이익률은 SK하이닉스(45.6%)가 마이크론(41.5%·2017년 8월31일 회계 기준)보다 높았다.

◆“아직 마이크론보다 덜 올라”

마이크론이 이달 들어 28.38% 올랐지만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상승률은 12.78%, -2.26%에 그치고 있어 상승 여력도 크다는 평가다.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 주가는 작년부터 거의 비슷하게 움직였지만 올해 SK하이닉스가 급락하면서 격차가 벌어졌다.

실적 전망도 올라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5조1417억원으로 석 달 전보다 14.8% 늘어났다.

작년 세계 증권가를 달궜던 ‘반도체업황 정점 논란’은 마무리돼가는 분위기다. 모건스탠리, JP모간, UBS 등은 “작년 말과 올해 초 반도체업황이 정점을 찍고 하락세를 탈 것”으로 내다봤지만 D램 가격은 비수기인 1분기에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 인터넷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로 예전과 다른 업황 사이클을 나타내고 있다”며 입장을 바꿨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과거에는 반도체 수요가 휴대폰, 개인용컴퓨터(PC) 등에 한정돼 있었지만 지금은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새로운 수요가 나타나고 있다”며 “실적을 감안할 때 당분간 반도체업종의 독주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만수/임근호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