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개편 리스크, 증시 반등에 '걸림돌'
남북한 관계 훈풍을 타고 기대 속에 출발한 5월 증시가 중순이 다 지나도록 맥을 못 추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위험)가 해소되면 돌아올 것이라던 외국인은 ‘팔자’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현대자동차그룹 등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투자심리가 악화된 데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인 삼성·현대차그룹주 팔자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는 이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2477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매도는 삼성과 현대차그룹주에 집중됐다. 지배구조 개편 관련 논란이 불거진 지난 10일부터 외국인 순매도 종목 1위는 삼성전자(2380억원), 2위는 현대차(1190억원)였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외국인 자금의 이탈로 이달 들어 각각 6.60%와 6.25% 하락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0일 10대 그룹 경영진과 만난 자리에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는 삼성의 현 출자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삼성을 압박했다.

증권가에선 다음달 중국 본토 주식(A주)의 MSCI지수 편입을 앞두고 글로벌 펀드들이 한국 주식 비중을 축소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외국인이 지배구조 개편이 진행 중인 삼성과 현대차그룹주를 집중 매도했다는 점을 예사롭게 볼 수 없다”는 의견도 많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지배구조 개편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정책 혼선을 지켜본 외국인들이 한국 증시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둘러싼 분식회계 논란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27일 주당 50만원이 넘었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1일 금융감독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했다”고 발표한 이후 이달 4일 37만원까지 떨어졌다. 한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1분기 외국인 순매수 3위 종목이었다”며 “‘정부가 이미 끝난 일을 들춰내 문제 삼으니 황당하다’는 반응이 외국인 투자자 사이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금융계열사들이 보유한 지분 처리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 위원장이 압박한 대로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사로 전환하기 위해선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3.6%를 팔아야 한다.

18일 종가 기준으로 11조437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삼성전자가 액면분할이라는 호재에도 하락세를 타는 배경엔 정부발(發) 오버행(대기 매물부담) 우려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외면

현대차그룹주는 야심차게 추진했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안갯속으로 빠져들면서 하락세다.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격에 이어 의결권 자문사인 ISS 등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간 분할 합병안에 반대하고 나서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현대차그룹은 연내에 어떻게든 지배구조 개편을 마무리해야 하는 처지다.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재계 순환출자 고리 해소의 마지막 주자가 현대차그룹이기 때문이다. 2013년 9만7658개에 이르렀던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는 지난달 41개로 대폭 줄어들었다. 현대차그룹의 ‘모비스→현대차→기아차→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만 해소되면 주요 대기업의 순환출자 고리는 사실상 사라진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의 노력은 ‘분할합병 비율이 모비스에 불리하다’는 반대 논리에 가로막혀 있다. 시장에서는 “애초 현대차그룹 개편안에 ‘환영’ 의사를 밝혔던 정부가 이후 특별한 의견을 내놓지 않으면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배구조 개편 호재로 주가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 모비스는 이달 들어 3.62% 떨어지는 등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