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벤처펀드 열풍 부니… 코스닥社 '제로금리 CB' 발행 배짱
자산의 15%를 벤처기업 신주로 채워야 하는 코스닥벤처펀드가 인기를 끌면서 코스닥·코넥스시장 상장사의 전환사채(CB) 발행이 줄을 잇고 있다. CB는 투자자가 원하면 발행 기업의 보통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으로, 코스닥벤처펀드의 편입 대상 신주로 인정된다.

3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4월 국내 기업(비상장사 포함)의 신규 CB 발행액은 지난해 4월(2275억원)보다 99.8% 급증한 4546억원으로 집계됐다. 김형호 한국채권투자자문 대표는 “지난 5일 국내에 처음 출시된 코스닥벤처펀드에 시중 자금이 대거 몰리면서 벤처기업 CB가 증시에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증시 일각에서는 신규 CB 공급이 급증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CB 발행사에 지나치게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넥스 상장사인 에프앤가이드는 지난 17일 60억원 규모의 CB(만기 3년)를 흥국자산운용 등 코스닥벤처펀드 운용사 두 곳을 대상으로 발행했다. 이 채권의 표면금리는 0%, 만기 수익률은 연 0.5%다. 주식 전환가는 주당 7015원으로, CB 발행 당일 이 회사 주가(종가 4700원)보다 50% 가까이 높다.

국내에서는 발행사 주가가 떨어져 전환가를 밑돌면 일정 기간마다 전환가를 처음보다 최대 30%까지 낮춰주는 조항이 붙는 게 일반적이지만, 에프앤가이드의 이번 CB는 이런 조건도 붙지 않았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CB 만기인 2021년 4월17일까지 이 회사 주가가 7015원을 넘지 못하면 주식 전환에 따른 자본 차익을 얻을 수 없고, 고작 연 0.5%의 이자만 챙길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는 “공모주를 우선 배정받기 위해 기대수익률이 사실상 제로(0)인 CB에 울며 겨자 먹기로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코스닥벤처펀드는 벤처기업 신주 투자 등의 요건을 갖추면 코스닥 공모주 물량의 30%를 우선 배정받을 수 있다. 코스닥 상장사인 RFHIC도 지난 9일 180억원 규모 CB를 발행하면서 ‘리픽싱 조항’을 달지 않았다.

사모펀드 운용사인 라임자산운용 관계자는 “코스닥벤처펀드 규모가 단기간에 급속도로 커지면서 성장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기업들까지 잇달아 유리한 조건에 CB를 발행하고 있다”며 “CB 등 메자닌(주가연계사채) 시장이 과열된 상태라고 판단해 당분간 신규 메자닌펀드는 내놓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헌형/나수지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