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가 5만5000개입니다. 은행에서 영업할 때부터 모아온 제 소중한 자산이죠. 카카오톡은 친구 등록을 1만 명까지만 할 수 있는데 혹시 아시나요? 너무 많아 다 등록을 못 합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김영규 IBK투자증권 사장은 대표적인 ‘영업통’으로 꼽힌다. ‘사람이 곧 재산’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36년간 은행맨으로 영업현장을 누볐다. 증권사에 온 지 약 5개월. 그사이 받은 명함만 벌써 1150장을 넘었다. ‘중소기업이 IBK투자증권을 만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 김 사장의 목표다.

지난 19일 서울 을지로에 있는 한식집 ‘남도한식 정든님’에서 김 사장을 만났다. 그가 기업은행 부행장으로 일할 때 자주 들렀던 식당이다. 전복, 낙지, 꼬막, 홍어 삼합 등 남도에서 올라온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김 사장은 그릇이 비워지는 동안 그의 금융 인생을 풍성하게 풀어냈다.

섬소년, 은행원 되다

김 사장은 전북 부안에 있는 작은 섬 위도에서 태어났다. 이 식당을 좋아하는 이유도 고향 음식, 특히 해산물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섬 출신 사람들은 해산물을 싫어합니다. 대다수 집안이 어업으로 생계를 꾸리고, 매일 먹는 게 그거니까요.” 그가 ‘남다른’ 섬사람 식성을 갖게 된 것은 아버지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뱃멀미가 심해서 어부를 못하고 면 서기로 일하셨습니다. 이웃집엔 해산물이 풍부했지만 저희는 늘 얻어먹었기 때문에 맛있고 귀했습니다.”

김 사장은 “나는 해산물을 많이 먹어서 건강한 것 같다”며 전복을 접시에 얹어 기자에게 권했다. 상대방부터 챙기는 것이 지점 영업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라며 마지막으로 본인 접시에 전복을 덜었다. 식당 주인이 전남 완도에 사는 부모님을 통해 구해 온 자연산 전복은 부드럽고 풍미가 좋았다.

아버지를 닮아 뱃멀미가 있던 김 사장은 일찌감치 섬에 남는 대신 육지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전북 전주로 ‘유학’을 갔다. “꽤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해서 명문으로 꼽히던 전주고 시험을 봤는데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결국 후기로 전주상고에 들어갔습니다. 전주고에 붙었으면 은행에 안 갔을 테니, 인연이란 게 있나 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와 기업은행 두 곳에 붙은 김 사장은 여러 사정을 고려해 은행을 택했다. 기업은행에 들어간 김 사장은 중소기업 수출입업무를 지원하는 외국환전문요원으로 발탁됐다. 대학 졸업자들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도전이었다. 그는 “당시 상업고 출신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금융연수원 과정을 거쳐 외국환전문요원으로 선발됐다”며 “서울 구로동지점을 시작으로 수출산업공단에 있는 주요 점포에서 일하며 중소기업에 관심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영규 IBK투자증권 사장 "망할 뻔한 중소기업 살린 덕에 '해결사' '진드기' 별명 생겼죠"
‘중소기업 해결사’로 거듭나다

그는 지점에서 일하며 영업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가는 곳마다 점포의 수익을 끌어올렸다. 비법을 묻자 ‘덤을 주는 전략’을 꼽았다. 대출이자를 깎아달라는 중소기업 사장에게 더 골치 아픈 회사 세무 문제를 나서서 해결해주는 식이었다. 은행의 이익을 지키면서 고객도 만족시키는 비결이라고 그는 소개했다. “2002년 최연소(42세) 지점장으로 승진한 것도 덤 전략 덕분이었다”고 김 사장은 말했다.

망할 뻔한 기업을 살린 적도 여러 차례다. 김 사장은 인천 남동공단지점장을 맡고 있던 2008년의 이야기를 꺼냈다. “거래하고 있던 한 기업의 대표가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사업을 더 하면 저한테 죄를 짓게 될 것 같다고, 기업은행 채무를 모두 갚겠다고 하더군요.” 알고 보니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다른 은행들이 대출을 다 회수하고 있었다. 회사 대표는 김 사장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법인 통장, 인감까지 넘기고 그대로 잠적해버렸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대로 공장 문을 닫게 할 순 없었다. 김 사장은 채무를 회수하는 대신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 사라진 대표를 수소문해 찾는 한편 다른 은행과 감독당국 등을 찾아다니며 설득해 자금 지원을 이끌어냈다. 그 기업은 당시 금융감독원이 도입한 패스트트랙(중소기업 유동성공급 프로그램) 1호 기업으로 선정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김 사장은 “그때 살아난 기업이 이번에 IBK투자증권 주관으로 상장을 앞두고 있다”며 “무슨 일이 있든 결국 해결한다고 해서 ‘해결사’, ‘진드기’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웃으며 말했다.

참기름과 참깨로 향을 살린 신선한 산낙지가 나왔다. 그는 살아 움직이는 낙지 다리를 집어 ‘먹어 보라’고 권했다. 입안에 달라붙는 낙지는 혀로 떼어내며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났다. 김 사장은 “남동공단에서 영업할 때 자주 먹던 음식이 낙지”라며 “힘이 좋아 떨어지지 않는 낙지처럼 끝까지 함께 가는 사이가 되자는 뜻으로 기업인들과 나눠 먹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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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명 ‘중소기업 위상을 높여라’

은행에서 증권사로 자리는 옮겼지만 중소기업이 중요하다는 소신은 그대로다. 취임 후 가장 관심을 두고 추진하는 분야도 ‘중소기업 기살리기’다. 김 사장은 취임 후 ‘IBK베스트챔피언’이라는 중소벤처기업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성장 잠재력이 뛰어난 중소기업을 선정해 적극 홍보하고 자금 지원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대학·대기업·중소기업과의 다자 간 업무협약 등을 통해 중소기업 일자리 창출 지원에 힘쓰고 있다. 김 사장은 “우리나라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평균 나이가 58세”라며 “중소기업의 위상을 높여야 더 좋은 일자리가 생기고, 청년들도 중소기업을 찾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IBK투자증권이 올해부터 중소기업과 함께 공개채용을 진행하는 것도 중소기업 기살리기의 일환이다. IBK투자증권이 신입사원 50명을 뽑으면서 6개 중소기업의 신입사원 50명도 함께 뽑는 방식이다. 선발된 신입사원은 약 2주간 합동 입문교육을 받는다. 김 사장은 “중소기업은 채용 숫자가 적다 보니 홍보도 어렵고, 훌륭한 인재도 모이지 않았다”며 “연합채용으로 중소기업들이 채용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목표는 ‘10·10·10’

중소기업 지원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지만 동시에 IBK투자증권의 발전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는 게 김 사장의 생각이다. 김 사장은 “규모가 큰 증권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IBK투자증권만의 비법”이라며 “중소기업에 ‘덤’을 줘서 IBK투자증권과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인연을 꾸준히 이어가서 기업이 상장이나 인수합병(M&A) 등을 하게 되면 증권사에도 수익이 된다고 김 사장은 말했다.

중소기업 특화 증권사로서 길을 걸어가는 한편 기업 규모를 키우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그는 “아직 구체화하진 않았지만 증자, 다른 증권사 인수합병 등을 포함한 외형 확장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임기 내에 자산 규모 10조원, 유효고객(예탁자산 1000만원 이상) 10만 명, 순이익 1000억원이라는 ‘10·10·10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부발탁·승진 기회 늘려 직원들 주인의식 키울 것"

김영규 사장은 “앞으로 10년 이상 IBK투자증권을 이끌어나갈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많은 50명의 신입사원을 뽑는 것도 인재 양성의 일환이다. 그는 “잠깐 일하고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쌓고 회사와 함께 성장할 직원들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엔 경영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영업력을 강화하고 여성 인재를 중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해까지 4명이던 여성 팀장이 10명으로 늘었다. 김 사장은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내부발탁과 승진 기회를 늘리고 있다”며 “이번 인사에서도 외부채용 없이 내부 승진으로 자리를 채웠다”고 말했다.

2008년 기업은행이 자본금을 출자해 설립한 IBK투자증권은 다음달로 설립 10주년을 맞는다. 김 사장은 다음달 26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전 직원과 가족, 고객들을 초청해 10주년 기념 ‘패밀리데이’ 행사를 열 계획이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영규 IBK투자증권 사장 "망할 뻔한 중소기업 살린 덕에 '해결사' '진드기' 별명 생겼죠"
김영규 사장의 단골집 남도한식 정든님

완도서 직송한 해산물로 한상 가득…홍어삼합 별미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영규 IBK투자증권 사장 "망할 뻔한 중소기업 살린 덕에 '해결사' '진드기' 별명 생겼죠"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남도한식 정든님’은 전라남도 한정식집이다. 기업은행 본점 맞은편에 있다. 김유진 사장이 전남 완도에서 부모님을 통해 직접 조달하는 싱싱한 해산물로 입소문이 나 있다. 서울시청 앞에 있는 ‘남도한식 고운님’은 자매점으로 김 사장의 언니가 운영한다.

점심 메뉴인 완도 특정식(2만5000원)에는 간재미초무침과 떡갈비, 간장게장과 마른생선찜, 보리굴비와 된장찌개가 나온다. 녹차를 곁들인 굴비 정식(1만9000원)도 인기다. 코스 요리(2만8000~5만원)를 시키면 전복찜과 벌교참꼬막, 굴전 등 남도 특선 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진다. 김 사장이 이 집의 별미로 꼽는 건 홍어삼합이다. 삭힌 홍어의 톡 쏘는 향이 중독성이 있어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다.

강영연/노유정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