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의 '규제 본능'… PEF 운용사 족쇄 채우나
지난 18일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에 예고 없이 금융감독원의 소집령이 떨어졌다. 불과 1주일 뒤인 4월26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대강당에서 원승연 금감원 부원장 주최로 ‘2018년 사모펀드 감독프로세스 개편방안 설명회’를 여니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금감원은 “운용사의 편의를 돕기 위해 PEF 설립 보고나 출자자(LP) 및 투자구조 보고를 전산화하고 ‘셀프 체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게 설명회의 주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PEF 운용사들이 ‘금융검찰’로 불리는 금감원의 부름을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정 조정 등을 해서라도 참석하기로 하고 설명회 내용을 들여다보던 PEF 운용사 관계자들의 표정은 이내 굳어졌다. ‘사모펀드 감독프로세스 개편방안’ ‘자산운용 검사방향 및 내부통제 관련 유의 사항’ 등 설명회 내용을 뜯어보면 운용사 규제 강화가 진짜 목적이라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PEF업계에서는 “금감원이 PEF 운용사에 대한 검사를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으로 해석했다. 투자 기구인 PEF와 이를 운영하는 운용사는 다른 주체인데도 금감원은 PEF 검사 때 운용보수 지출 내역, 인사제도, 채용제도 같은 운용사 자료를 요구하는 사례가 많았다. ‘운용사를 검사해야 PEF도 검사할 수 있다’는 논리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불법이다.

자본시장법상 PEF 자체는 금융투자업자여서 금감원의 감독·검사 대상이다. 반면 운용사는 아니다. 자율적인 투자 활동을 보장해주기 위한 취지다. 장기적으론 PEF도 감독·검사 대상에서 제외시킨다는 방침이었지만 거꾸로 흘러갔다.

운용사를 감독 대상에 포함시키는 건 PEF의 손발에 족쇄를 채우는 행위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금감원은 이달 들어서도 도미누스인베스트먼트와 키스톤PE, 큐캐피탈 등 4곳의 운용사를 대상으로 강도 높은 검사를 벌이고 있다. 검사 때마다 ‘PEF 검사를 나와서 왜 법적 근거도 없는 운용사까지 뒤지느냐’는 반발이 끊이지 않자 운용사 감독·검사권을 확실히 해두자는 취지에서 설명회를 급조했다는 얘기가 PEF업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운용사에 대한 감독권 행사는 정부의 규제 완화 흐름과 배치된다. 가뜩이나 한국의 사모펀드는 2004년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개정으로 도입 때부터 공모펀드와 같은 수준의 규제를 받아왔다. 한국은 PEF 운용사들의 투자 행위까지 감독(운영규제)하는 유일한 나라다.

기업 구조조정의 축이 은행에서 자본시장으로 이동하면서 PEF의 중요성이 커지고 관련 규제도 완화되는 추세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지난해 10월에도 설립 5년이 넘도록 청산하지 못한 PEF의 전수조사를 시행해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만기가 10년 이상인 PEF의 구조조차 이해하지 못한 감독권 행사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설명회는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와 조율을 거치지 않은 행사로 전해진다. 금융위원회는 4월3, 17, 24일과 5월11일 등 총 네 차례에 걸쳐 PEF 운용사들이 참석하는 별도의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있다.

한 PEF 운용사 대표는 “금감원이 PEF 운용사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라며 “행사 1주일을 앞두고 전원 참석하라는 것 자체가 권위주의적”이라고 꼬집었다.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