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박스'에 갇힌 한국 외부감사 시장
기업이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을 6년간 자유 선임하면 정부로부터 3년간 강제 지정받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2020년부터 시행된다. 감사인 지정을 받지 않으려면 금융감독원에 회계 감리를 신청한 뒤 자발적으로 감사인을 바꿔야 한다. 비자발적이냐 자발적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어떤 경우에도 감사인 교체는 의무화된다. 기업들은 “강제 지정보다 더 혹독한 예외 규정”이라며 “외부감사 시장을 규제박스에 가둬버리는 조치”라고 반발했다.

◆예외 없는 ‘6+3 원칙’

금융위원회는 8일 ‘회계개혁을 위한 외부감사법(신외부감사법) 시행령 전부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규제개혁위원회와 사전협의 후 입법예고를 거쳐 오는 11월 시행될 예정이다.
'규제 박스'에 갇힌 한국 외부감사 시장
개정안에 따르면 2020년부터 전체 상장사와 소유·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대형 비상장사(자산 1000억원 이상, 대표이사 지분 50% 이상)를 대상으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도입된다. ‘외부감사인을 6년 자유 선임하면 3년간은 지정받는다’는 ‘6+3 원칙’에 따라 2014년부터 감사인을 자유 선임해오고 있는 기업은 2020년부터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새로운 외부감사인을 지정받는다.

예외를 인정받으려면 △지정 기준일이 되기 1년 전 회계감리를 신청해야 하고 △내부회계관리 제도에서 3년 연속 ‘적정’ 감사의견을 받아야 하며 △감사인을 스스로 교체할 것을 약속하는 등 세 가지 조건을 지켜야 한다. 기업들은 6년간 감사인을 자유 선임한 뒤에는 감리를 받고 자율적으로 교체하든지, 감리를 받지 않고 감사인을 강제 교체당하든지 선택해야 한다.

금융위는 시행 첫해 혼란을 막기 위해 기존 감사 계약(통상 3년 주기)은 인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상장사 중 2020년 629곳, 2012년 311곳, 2022년 365곳 등이 순차적으로 감사인을 교체하게 된다.

◆원칙상 모든 회사가 외감 대상

외부감사 대상 기준은 영국 등 선진국 방식으로 전환된다. 현행 외감 대상은 ‘자산 120억원 이상’ 또는 ‘자산 70억원이고 부채 70억원 이상이거나 종업원 수 300인 이상’인 기업이다. 앞으로는 원칙상 모든 회사가 외감 대상이 된다. 소규모 회사만 빠진다.

소규모 회사란 ‘자산 100억원 미만, 부채 70억원 미만, 매출 100억원 미만, 종업원 수 100인 미만’ 등 4개 기준 중 3개를 충족하는 업체다. 외감 대상 수는 현행 2만9000개에서 3만3000개로 증가한다.

구글코리아 루이비통 등 유한회사도 주식회사처럼 외부감사를 받고 결과를 공시해야 한다. 자율 규정이던 내부회계관리 제도에 감독 규정이 신설된다. 부실하게 운영하면 임직원 해임 권고나 직무정지 등 중징계 처분을 받을 수 있다.

3월 말 몰린 주주총회를 4월로 분산시키는 ‘벚꽃 주총’ 대책도 함께 발표됐다.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3월31일) 이후 주총을 여는 기업에 한해 재무제표 제출 기한을 현행 ‘주총 6주 전’이 아니라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 6주 전’으로, 감사보고서 제출 기한을 현행 ‘주총 1주 전’이 아니라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 1주 전’으로 변경할 수 있다. 4월에 주총을 열어도 감사보고서 작성에 문제가 없도록 하려는 조치다.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회계 규제”

기업들은 이번 개정안이 “세계에서 유례없는 강한 규제”라며 반발했다. 감사인 지정제는 한국에만 생기는 제도인 데다 예외 규정이 너무 까다로워 사실상 지정제를 강제화한 조치라는 주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과 한국 감독당국의 관리를 동시에 받고 있는 SK텔레콤, 포스코, 신한금융지주 등 뉴욕 상장법인조차 지정 대상에 들어가 기업의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