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원화 강세에 투자자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달러당 1050원대까지 떨어지면서 ‘달러 재테크’에 나섰던 자산가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원화 강세는 국내 증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원자재 수입 비중이 큰 전력과 음식료 항공주에는 호재지만, 반도체 자동차주 등 수출 비중이 큰 종목에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전력·음식료·항공株 '맑음', 달러ETF·車·IT株 '흐림'
◆“1020원대까지 하락할 수도”

코스피지수는 3일 1.73포인트(0.07%) 하락한 2442.43에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80원이었던 지난달 22일 이후 9거래일간 2.15% 떨어졌다. 외국인투자자가 이 기간 유가증권시장에서 8242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한 영향이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달러당 1054원20전까지 하락해 2014년10월 이후 3년5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원화 강세는 증시에 호재로 간주된다. 기업들의 수출이 잘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데다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의 자금 유입도 기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며칠간 정반대 모습이 나타났다.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달러당 1060원대가 깨진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이 한국에 ‘환율조작 금지’를 강하게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원화 가치가 추가 절상될 우려가 커졌다”며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떨어지면 수출 기업의 경쟁력이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화 강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영화 교보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통상 압력에 중국이 당분간 위안화 절상 기조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며 “원화도 위안화 영향을 받아 당분간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KB증권은 원·달러 환율이 연내 달러당 1020원 수준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작년부터 인기를 끈 달러 연계 재테크 상품은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본격화하면 달러 가치가 오를 것으로 보고 뭉칫돈을 넣었던 투자자들의 고민이 커졌다. 미국 달러선물 가격 변동의 두 배만큼 움직이는 상장지수펀드(ETF) ‘KODEX 미국달러선물레버리지’는 최근 한 달간 5.02% 떨어졌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개인의 달러 예금은 130억달러가 넘는다.

한국전력·CJ제일제당 등 수혜

투자자의 관심은 원화 강세가 국내 증시에 미칠 영향에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매도세는 차츰 진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는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원화가 약세일 때 증시가 부진했다”며 “미국뿐 아니라 유럽 중국 신흥국의 경기가 좋고 다른 국가들의 통화 가치도 강세이기 때문에 증시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종별로는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 1차적으로 내수주에 호재가 될 수 있다. 음식료 업체들은 밀 콩 설탕 등 원자재를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이날 약세장에서도 CJ제일제당(2.28% 상승) 오뚜기(4.07%) 대상(1.93%) 등 음식료주가 강세를 보인 배경이다. 천연가스 석유 등 연료를 수입하는 한국전력도 5.11% 급등했다. 연료비를 줄일 수 있는 대한항공(4.66%) 아시아나항공(2.24%) 등 항공주도 수혜주로 거론된다.

반면 원화 강세가 수출 기업에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환율이 더 떨어지면 반도체 자동차 해운 등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업종에 충격을 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