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 인색한 기업 이사·감사 연임 반대"

'공룡' 민간 위원회 탄생
의결권 행사 대상 772곳
기업 좌우하는 권력기관화 우려

배당 확대 압박 수단 명문화
'합리적 배당' 판단 기준 없어
"기업 경영 과도하게 개입" 논란
국민연금이 합리적인 배당정책을 수립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 이사와 감사 연임을 반대하는 방안을 명문화했다. 국민연금의 배당 확대 요구 등에 응하지 않으면 주주총회에서 재무제표 승인 안건은 물론 이사 및 감사, 감사위원회 위원 연임 안건에도 반대표를 행사하겠다는 취지다.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연금을 앞세워 민간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실질적인 권한은 투자를 총괄하는 기금운용본부에서 9명의 교수들로 구성된 민간위원회로 넘어갔다. ▶본지 1월26일자 A1, 24면 참조

◆논란 속에 탄생한 공룡 위원회

국민연금, 민간위에 의결권 행사 이관 확정

보건복지부는 1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의결권 전문위)에 ‘안건 부의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의결권 행사지침 개정안을 의결했다. 앞으로 9명의 의결권행사 전문위원 중 3명 이상이 요구하면 기금운용본부는 해당 안건의 의결권 결정을 전문위에 넘겨야 한다.

개정 전 지침은 ‘기금운용본부가 찬성 또는 반대를 판단하기 곤란한 경우에만 의결권 전문위에 결정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번 지침 개정으로 그동안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자문위원회 역할을 했던 의결권 전문위가 국내 주요 기업과 금융회사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룡 위원회’로 재탄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연금이 지분 1% 이상을 보유하거나 전체 주식 운용액의 0.5% 이상을 차지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기업은 지난해 말 기준 772개에 달했다. 당장 김정태 회장 연임 안건이 올라가는 23일 하나금융지주 주주총회부터 의결권 전문위 결정에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투자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건 전문성과 독립성이다. 예를 들어 기업 간 합병과 같이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경영 현안을 법학, 정치학 교수들이 ‘다수결’로 결정하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다. 독립성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공단이 안건을 전문위에 올리지 않고 직접 결정해 논란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이번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 사용자단체, 근로자단체, 지역가입자단체 등이 추천하고 복지부 장관이 임명하는 의결권 전문위원들이 투자 전문가로 구성된 기금운용본부에 비해 더 정치적으로 독립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배당의 합리적 수준 누가 판단하나”

국민연금은 이날 지침 개정을 통해 합리적인 배당 정책을 수립하지 않는 기업을 의결권 행사를 통해 압박할 수 있는 수단도 명문화했다. ‘기업과의 대화’를 통해 합리적 배당 정책 수립을 요구했는데, 이를 반영하지 않으면 △이듬해 주주총회에서 재무제표 승인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고 △그래도 개선되지 않으면 그 이듬해에 당시 재직했던 이사, 감사 및 감사위원회 위원 연임을 반대한다는 내용을 의결권 행사 지침에 명시했다.

국민연금은 2015년 6월부터 과소배당 기업들을 ‘중점 관리기업’으로 선정하고 재무제표 승인 안건에 반대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지난해 과소배당을 이유로 17건의 재무제표 승인 안건에 반대했다. 하지만 이사나 감사 선임에 반대한 사례는 없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배당 확대 요구의 실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금운용본부 책임투자팀이나 의결권 전문위가 ‘배당의 합리적 수준’을 판단할 전문성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나 정치권이 기업을 손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의결권 전문위 위원장인 황인태 중앙대 교수는 “배당을 무조건 늘리라는 것이 아니라 기업 상황에 맞는 배당 정책을 수립해 공시하라는 뜻”이라며 “아직은 주로 ‘과소배당’이 문제가 됐지만 앞으로는 ‘과대배당’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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