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회사들의 올해 정기 주주총회 화두는 ‘경영 투명성 강화’와 ‘주주가치 높이기’다. 정부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 압박과 일감 몰아주기 등 내부거래 해소 요구가 거센 데다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낙하산 인사 등 외압을 막을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KT)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조직을 신설(대림산업, 현대백화점)하는 안건이 주총에 대거 올라왔다. 출신·성별·국적을 따지지 않고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통상 압박과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안팎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예년에 비해 신사업 진출이나 설비 투자 등은 뒤로 밀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목소리 커진 주주 눈높이 맞춰라"… 투명경영·배당확대 '잰걸음'
경영 투명성 강화 나선 상장사들

대림산업은 오는 22일 주총에서 이사회 아래 ‘내부거래위원회’를 신설하는 안건을 처리한다. 이 회사는 총수일가가 경영권을 보유한 대림코퍼레이션 등과의 내부거래로 공정거래위원회 규제 대상이 되자 계열사 간 거래를 더 투명하게 하기 위해 이 조직을 신설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백화점은 이사회 밑에 ‘내부거래위원회’와 ‘보상위원회’를 두기로 했다. 대주주 및 특수관계자 등과의 내부거래는 물론 경영진의 경영성과 평가와 보상의 객관성을 높이려는 취지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운송·물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는 주총에서 ‘주주권익보호 담당 사외이사직’ 신설을 안건으로 상정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국내외 일반 주주로부터 추천을 받아 길재욱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코스닥시장위원장 내정자)를 후보자로 올렸다. 주주들이 추천한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것은 30대 대기업 및 계열사 중 처음이다. 주주 추천 사외이사는 이사회를 비롯한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주 입장을 최우선으로 반영하고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수장이 바뀐다’는 얘기를 듣고 있는 KT는 이달 주총에서 독립경영을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정관을 고치기로 했다. KT는 23일 주총을 열어 정관에 명시된 회장 후보 심사 기준 중 하나인 ‘경영경험’을 ‘기업경영경험’으로 좀 더 명확하게 바꿀 계획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관료 및 정치인 등 이른바 ‘낙하산’이 내려오는 일을 막아보자는 판단에서다. 포스코는 사외이사 정원을 12명에서 13명으로 늘리는 정관 변경 안건을 주총에서 처리한다. 사내이사(5명)보다 사외이사 수를 늘려 각종 경영판단 등을 할 때 외부의 객관적인 목소리를 많이 반영하기 위해서다.

사외이사 다양성 확대

전직 최고경영자(CEO), 외국인, 여성 등으로 사외이사의 다양성이 확대된 점도 올해 주총 트렌드 중 하나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통신장비업체 알카텔루슨트의 벨 연구소 소장 등을 지낸 한국계 미국인 김종훈 키스위모바일 회장을 사외이사 후보 명단에 올렸다. 대림씨엔에스는 ‘초콜릿폰’을 비롯한 LG 휴대폰 성공신화를 이끈 박문화 전 LG전자 사장을, LG디스플레이는 황성식 전 삼천리 사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다.

여성 사외이사도 눈에 띈다. 삼성전자는 첫 여성 법제처장을 지낸 김선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신미남 전 두산퓨얼셀 사장(에쓰오일)과 최명희 한국내부통제평가원 부원장(KB금융)도 여성 사외이사 후보들이다. 삼성물산은 필립 코쉐 전 제너럴일렉트릭(GE) 최고생산성책임자(CPO)를 사외이사로 내정했다.

주주 중시 경영이 확산하는 추세에 따라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안건도 많이 올라왔다. 삼성전자(액면가 5000원→100원)를 비롯해 만도, 한국철강, 한국프랜지 등이 주총에서 액면분할 안건을 다룬다.

SKC는 올해 처음으로 중간배당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모바일 게임업체 컴투스도 분기배당에 나선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소액주주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경영 안정성을 위해 필수라는 인식이 상장사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