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미국 동부시간 오전 8시30분. 미국 노동부가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달보다 0.5%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시장전망치 0.3%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였다. 개장을 앞둔 뉴욕증시의 다우존스선물지수는 순식간에 100포인트 가까이 급락했다. 대서양 너머에선 상승세를 타던 유럽증시가 일제히 하락 반전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은 ‘물가 상승→금리 급등→증시 급락’으로 이어지는 ‘악몽’을 떠올렸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장 초반 0.61% 하락했던 다우지수가 반등에 성공해 1.03% 상승한 채 마감했다. 시장이 ‘과도한 우려’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글로벌 증시가 ‘인플레이션 우울증’을 극복한 순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현 금리는 감내할 만한 수준”

이달 초 글로벌 증시 조정이 이어지는 기간에도 ‘미국 경제의 호황이 견인하는 금리가 과연 증시에 악재인가’라는 의구심을 품는 투자자가 많았다. 지난 설 연휴 기간 이런 의문은 ‘최근 금리 상승이 증시 발목을 잡을 수준은 아니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미국 월가에서 ‘기술적 분석의 고수’로 유명한 랠프 아캄포라 알테이라캐피털 이사는 “호황기엔 금리와 주가 지수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가 많다”며 “장기간 황소장이 이어졌던 1941년부터 1962년까지 미국 금리도 함께 상승 궤적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미국 기업들의 양호한 실적도 시장의 자신감을 키우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S&P500지수를 구성하는 종목들은 연말 보너스 등 대규모 일회성 비용이 발생한 금융업종을 제외하면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1.2%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약간의 인플레는 보약"… 미국 국채금리 급등에도 '용수철 장세' 연출
◆인플레이션에 맷집 키운 증시

다우지수가 장중 6.26% 폭락한 지난 5일 이후 전 세계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 금리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지난 12일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1조50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과 14일 전망치를 웃돈 것으로 나온 CPI 결과는 금리 상승을 자극할 수 있는 요인이었다.

미국 국채 금리는 이들 발표 이후 급등세를 탔다. 미국의 지난달 CPI가 전월 대비 0.5% 상승했다는 발표가 나온 지난 14일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장중 한때 연 2.93%까지 치솟아 4년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증시는 우려와 달리 상승세를 이어갔다. 다우지수는 지난 한 주(12~16일)간 4.25% 뛰었다. 이 기간 대형주 중심의 S&P500지수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도 각각 4.30%, 5.31% 올랐다. S&P500지수는 2013년 1월 이후 약 5년 만에, 나스닥지수는 2011년 12월 이후 약 6년 만에 최대 주간 상승 폭을 기록했다.

뉴욕증시가 회복하면서 글로벌 주요국 증시도 상승세로 돌아섰다. 지난 한 주간 영국 FTSE100지수(2.85%), 프랑스 CAC40지수(3.98%), 홍콩 H지수(5.33%) 등이 오름세를 탔다.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그룹 회장은 “미국의 든든한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과 기업 실적이 인플레이션 공포를 눌렀다”고 말했다.

◆미국 경기둔화 여부 촉각

글로벌 증시가 빠르게 회복하고 있지만 작년처럼 견조한 상승세를 이어갈지에는 물음표가 달려 있다. 조정과 회복을 반복하면서 변동성이 커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투자자들은 미국의 경기둔화 가능성이 새로운 악재로 떠오를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시장은 지난 14일 미국의 1월 CPI가 예상치보다 높게 나온 것보다 같은 날 발표된 소매판매가 둔화한 데 더 큰 관심을 나타냈다. 지난 1월 미국 소매판매는 시장 예상과 달리 전달보다 0.3%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전문가들은 “올겨울 미국을 강타한 강추위 등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분석된다”면서도 “경기둔화와 인플레이션이 같이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전조라면 증시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