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에서 700포인트 넘게 미끄러지던 다우지수는 오후 3시3분께부터 15분간 약 900포인트 추가 급락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50일 이동평균선이 깨지자 매물이 쏟아져 매수공백이 발생한 탓이다. 지난주 초 미국 국채 금리 급등에 따라 예고된 조정장세가 대규모 알고리즘 매물을 만나 폭락으로 이어졌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갑작스러운 ‘플래시 크래시’

이날 오전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연 2.885%까지 치솟으면서 금리 상승 우려가 커졌다. 전날 재닛 옐런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주식 가격이 높다”고 한 발언도 악재였다.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토니 제임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올해 주식시장이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며 “10~20% 조정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 투자심리를 잔뜩 오그라들게 했다.

이렇게 위축된 투자심리로 다우지수 하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컴퓨터 알고리즘 매물이 터져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오후 3시부터 15분가량 너무 빠르게 수많은 매도 주문이 쏟아져 호흡하기조차 힘들었다”고 전했다.

미국 BB&T자산운용의 월터 헬위그 부사장은 “오전장 하락은 인간에 의한 것이었지만 오후장의 자유낙하는 기계에 의한 것이었다”며 “2010년 ‘플래시 크래시’와 똑같아 어안이 벙벙했다”고 말했다.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는 짧은 시간에 컴퓨터 알고리즘 매도 물량이 쏟아져 주가가 급락하는 것을 말한다. 2010년 5월 당시 이 매매로 다우지수는 9% 넘게 추락했다.
9년 황소장 뒤흔든 컴퓨터의 투매… 뉴욕증시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ETF가 또 다른 뇌관 될까

지난해 말 기준 3조4400억달러에 달한 미국의 상장지수펀드(ETF)가 증시에 추가 부담을 줄 가능성도 제기된다. ETF에서 자금 유출이 본격화하면 증시 하락세를 가속시킬지 모른다는 경고다.

월스트리트저널은 “ETF 거래량이 이날 오후 3시30분을 넘어 전체 주식거래량의 40%에 달했다”며 “평소 25% 수준보다 훨씬 많았다”고 보도했다. 도이치뱅크의 ETF 판매 총괄인 크리스 햄스테드는 “ETF 거래 폭발은 많은 사람이 매도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시가 조정 조짐을 보이면서 지난 1일 처음으로 주식형 ETF에서 34억달러가 빠져나갔다.

JP모간의 니컬러스 파닉글처글루 전략가는 “ETF에서 자금유출이 시작된다면 증시 하락뿐 아니라 뮤추얼펀드 등의 매도도 유발해 증시 하락을 더 부추길 수 있다”고 예측했다.

ETF 투자자들은 시장의 추세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지난 수년간의 상승장에서 지속적으로 자금이 유입된 ETF가 주가를 밀어올리는 가속페달 역할을 했다. 정반대 상황인 지금의 조정장에서 ETF 투매가 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설명이다. 미국엔 레버리지를 세 배까지 투자하는 ETF가 많다.

글로벌 ETF 총자산은 지난 한 해에만 1조3000억달러 늘어 4조8000억달러로 불어났다. 전년보다 37% 증가한 수치다. 이 중 주식형 펀드는 77%인 3조7000억달러에 달했다.

경제 펀더멘털은 “이상 무”

미국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에는 별다른 이상 신호가 없다. 실업률이 4.1%로 유지되고 있고 1분기 경제성장률은 3%(연율 기준)를 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 1월 서비스업(비제조업) 활동은 예상치를 웃돌아 97개월째 확장세를 유지했다. 이날 백악관은 “경제성장률 상승, 역사적으로 낮은 실업률, 노동자 임금 증가로 판단할 때 경제 펀더멘털은 이례적으로 강한 상태”라며 증시 폭락 진화에 나섰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이날 오후 한때 연 2.6%대까지 하락했다. 증시 폭락으로 Fed의 기준금리 인상 전망도 후퇴하고 있다. CNBC 방송은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의 트레이더들이 올해 세 차례 이상 금리가 인상될 확률을 50% 밑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102개월째 이어지는 미국 경기확장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증시와 채권시장이 요동친 건 경기 주기가 (예상보다) 더 후반에 도달했을지 모른다는 시각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 알고리즘 매매

algorithmic trading. 미리 설계된 조건에 따라서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주식을 사고파는 거래방식. 사람의 불완전한 지식과 감정을 배제할 수 있고, 단시간에 대량 매매가 가능하지만 프로그램 오류가 발생하면 주식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도 있다. 글로벌 헤지펀드 등이 주로 이용했지만 2000년 이후 점차 대중화해 자산운용사, 증권사 등도 알고리즘 매매를 활용하고 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