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의 한 특급호텔에 미국계 투자은행(IB)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의 국내외 뱅커들이 모였다. 국내 대기업 임직원과 주요 사모펀드(PEF) 운용역도 자리를 함께했다. BoA메릴린치의 전신인 BoA 서울 지점 개점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BoA는 1967년 한국 정부가 외국계 은행에 문호를 개방한 것을 계기로 그해 11월 서울 을지로에서 문을 열었다. 마크 창 BoA메릴린치 아태지역 홍보담당 헤드는 “단순 은행 업무만 하는 20명의 작은 지점으로 출발해 한국 기업의 인수합병(M&A), 자금 조달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종합 금융회사로 자리매김했다”고 소개했다.

‘공포 대상’에서 ‘글로벌 가교’로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한국에 진출한 지 지난해로 50주년을 맞았다. 1967년 정부가 외국계 금융기관의 국내 시장 진입을 허용하자 금융업계에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해 7월 체이스맨해튼 은행(현 JP모간체이스)이 외국은행으로는 처음 문을 열었다. 체이스맨해튼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으로 당시 잔액이 3조7115억원 수준이었다. 당시 국내 시중은행 전체 잔액(1090억원)의 35배에 달하는 규모다.
한국기업-글로벌 자본시장 '가교 역할'… 외국계 금융회사 한국 진출 50년
한 언론은 “세계 최대 자동수요처리기로 하루에 200만 매, 250억불에 달하는 수표를 자동화된 기계로 처리할 수 있는 은행”이라며 “이런 은행의 진입이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이 어떨지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같은해 BoA를 비롯해 씨티은행이 차례로 한국에 지점을 열었다. 이후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노무라 등 외국계 은행의 국내 진출이 줄을 이었다.

1990년대 들어 자본 시장은 외국계 투자은행들의 ‘텃밭’이 돼 갔다. 외국계 금융기관에 증권사 업무 허가를 내주자 그동안 국내에서 시도되지 않던 다양한 기업 간 거래 자문이 등장했다. 한 국내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 업무 허가가 나자 외국계 증권사가 해외 네트워크와 자문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에서 관련 자문을 독식했다”며 “한때 정부 관련 거래 자문에는 국내사에 가중치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만큼 한국 경제의 중요한 순간에 ‘해결사’ 역할을 한 경우도 많았다. 메릴린치는 1974년 한국의 첫 유로본드(유로화채권) 발행을 성공적으로 주관해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씨티은행은 같은 해 석유 파동이 일자 한국 정부에 먼저 2억달러 상당의 대출을 제안하기도 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골드만삭스와 씨티은행은 한국 정부의 첫 외평채(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을 성사시켜 위기를 모면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금융 시장을 안정화시킨 한·미 간 300억달러 통화 스와프(교환) 거래도 외국계 투자은행의 활약이 없었다면 성사되기 어려운 거래였다는 평가다.

국내 증권사 대비 1인당 수익성 3배

금융투자협회 공시에 따르면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투자은행(증권사) 19곳은 지난해 3분기까지 총 3965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같은 기간 국내사들은 2조5097억원을 벌어들였다. 자본 대비 벌어들인 수익의 정도를 따지는 자기자본수익률(ROE)은 외국계가 평균 6.16%로 국내사 평균(6.01%)보다 조금 높았다.

1인당 수익률은 차이가 두드러졌다. 이 기간 외국계 증권사 직원 한 명이 올린 수익은 3억3857만원이었다. 같은 기간 국내 증권사는 1억1817억원이었다. 1인당 수익 창출력에서 외국계가 국내 증권사들 보다 3배가량 높았던 셈이다. 한 국내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에는 수익성이 낮은 중소 증권사가 아직 많은 데다 수수료 덤핑 관행 때문에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수익이 낮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높은 수익 대부분을 해외 본사로 배당하는 관행은 외국계 증권사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의 주된 원인이다. BoA메릴린치는 지난해 순이익 전액(642억원)을 본사로 송금했으며, JP모간도 2016년 700억원을 본사에 보냈다. 두 회사뿐 아니라 대부분 외국계 증권사가 높은 배당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회사는 지난해 급작스럽게 국세청 조사를 받기도 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한국 시장에 진출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외국계 IB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한국 기업 및 기관투자가들과 글로벌 자본 시장을 잇는 가교 역할 등 긍정적 측면을 평가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