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 큐! IPO]패션플랫폼 "'두 번의 성공신화'에 패션업계가 놀랐죠"
13년 전 박원희 패션플랫폼 대표(당시 메이븐에프씨 대표·사진)에게 일곱 명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2004년 부도로 문을 닫은 유나이티드쓰리의 채권자들이었다. 유나이티드쓰리는 당시 청바지 브랜드 'FRJ'를 운영하던 의류업체다. 이 회사에 물건을 납품했던 메이븐에프씨도 20억여원의 대금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일곱 명의 채권자들이 그런데 박 대표에게 채권단 대표를 맡아달라고 요청해 왔다.

"저희 업체가 가장 피해 금액이 컸죠. 상거래 채권자 중 가장 기업 규모가 크기도 했고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일단 부도가 난 회사 본사로 갔습니다. 텅 비어있더군요. 주주들과 임직원들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대부분 규모가 영세한 업체를 운영하던 채권자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등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같은 상태에서 유나이티드쓰리의 경영을 맡았습니다."

4년 간 이 의류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200억여원이 넘는 빚을 다 갚았다. 그런데 회사가 정상 궤도에 오르니 사라졌던 주주들이 돌아왔다. 다시 회사를 내놓으라는 압박과 함께 각종 소송에 시달렸다. 결국 박 대표는 회사를 나왔다. 원금만 건졌다. 그런데도 박 대표는 이를 '사회생활 중 가장 소중한 경험'으로 꼽는다.

"이 때의 경험이 현재 패션플랫폼을 잘 운영할 수 있도록 한 자양분이 된거죠." 지난 12일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패션플랫폼 본사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 에쿠스에서 모닝으로

패션플랫폼은 여성의류 회사다. 소비자들에게는 여성복 '레노마레이디'로 잘 알려져있다. 박 대표는 패션플랫폼을 2009년 레노마레이디 브랜드를 인수하면서 설립했다. 유나이티드쓰리의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한 후 약 1년 만이었다.

유나이티드쓰리를 맡기 전에는 의류 프로모션 업체인 메이븐에프씨(현재 패션플랫폼 최대주주)를 운영했다. 프로모션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으로 의류를 수입해 브랜드에 납품하는 일을 말한다. "의류 브랜드에 제품을 납품하던 일만 해보다가 유나이티드쓰리의 경영을 맡으면서 브랜드를 직접 운영하는 경험을 쌓게 된거죠."

박 대표는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임 당시에는 힘들었다. 의류업계에서 브랜드는 소위 '갑', 납품업체는 '을'이다. 브랜드 시장에서 다시 프로모션 업계으로 돌아가면서 갑에서 을로 복귀하게 된 박 대표는 차부터 바꿨다. "당시 제일 좋은 차로 꼽히던 에쿠스를 팔고 경차 모닝을 타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마음가짐을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죠."

그런데 모닝을 타고 다닌지 6개월만에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다. 레노마레이디 브랜드 인수 요청을 받은 것이었다. 인수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FRJ 운영을 통해 브랜드 경험도 쌓았고 또 저희 회사가 여러 여성복 거래처에 물건을 납품하고 있으니 레노마레이디를 맡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온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소생이 쉽지 않은 브랜드라 싼 값에 인수할 수 있었습니다."

◆ 죽은 브랜드 두 번 살린 '매직'

레노마레이디의 인수를 결정했지만 맡고 보니 상황은 심각했다. 백화점에서는 매장이 모두 철수했고 아울렛에만 30여개가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나마도 고객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위치에 입점해있었다.

새 브랜드를 인수해 흥행시키는 것보다 죽은 브랜드를 되살리는게 더 어렵다. "처음 몇 년 간은 백화점에 들어가는 건 꿈도 못꿨어요. 처음에 인수한 32개 매장 중 살아남은 건 5개 매장에 불과했습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기로 했다. 시간을 들여 조직 내부부터 뜯어 고치기로 했다. "마케팅에 돈을 들여 일시적으로 브랜드를 회생시키는 방안도 있죠. 하지만 브랜드를 장기적으로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조직 내부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먼저 직원 찾기에 들어갔다. 인수 당시 우수한 인력들은 대부분 회사를 빠져나간 상황. 인재를 찾기 위해 발로 뛰었다. 박 대표는 원래 술을 잘 못했다. 하지만 인재 영입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주량이 크게 늘었다. 능력있는 직원들을 유지하는 것에도 많은 노력을 들였다. 이 과정에만 3년이 걸렸다.

인력 배치가 끝나자 사업도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2013년부터는 흑자가 나기 시작했다. 백화점 입점에도 성공했다. 매장 수는 165개로 늘었다. FRJ부터 레노마레이디까지 죽은 브랜드 두 개를 다시 일으킨 박 대표를 바라보는 패션업계의 시선도 달라졌다.
보니스팍스 서래마을점. 패션플랫폼 제공
보니스팍스 서래마을점. 패션플랫폼 제공
◆ 내년 2월 코스닥 상장…신사업 진출 노린다

2015년부터 패션플랫폼은 신규 브랜드 사업을 시작했다. 30~40대 여성을 겨냥한 브랜드 '보니스팍스'를 선보였다. 브랜드 론칭 첫 해부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박 대표는 "틈새시장 공략이 비결"이라고 말한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경쟁이 치열한 여성복 시장에서 이윤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빈틈을 찾았습니다. 해외 명품과의 경쟁해야 하는 고가 여성복 라인과 자라, 갭, 유니클로 등 글로벌 제조·직매형 의류(SPA·패스트패션) 브랜드가 시장 대부분을 선점한 캐쥬얼 시장은 포기했습니다."

중저가 여성복 시장을 파고 들었다. 고가 여성복 라인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아 수요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또 셔츠, 면바지 등 기본적인 옷을 주로 만드는 SPA 브랜드가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개성'을 브랜드 이미지로 내세웠다. 다양한 품목을 조금씩 판매할 수 있는 편집샵 형태로 브랜드를 꾸렸다.

20~30대 여성 소비자를 겨냥한 '헤라드레스코드'도 올해 론칭했다. 중국 시장 진출을 염두해 둔 브랜드다. 패션플랫폼은 보니스팍스와 헤라드레스코드를 통해 신규 브랜드 매출 비중을 점차 높여나가고 있다. 2014년 0.6%에 불과했던 자체 브랜드 비중은 올해(3분기 기준) 37.6%까지 늘었다.

새로운 사업 분야를 확장하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유·아동복과 스포츠 의류 시장 진출이 목표다. 이를 위해 내년 2월에는 코스닥 상장에 나선다. 박 대표는 "새로운 사업군을 통해 온라인 판매에 집중해 볼 생각"이라며 "코스닥 상장으로 기업의 신뢰도를 높아지면 사업군 확장 계획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패션플랫폼은 오는 20일 신영스팩2호와 합병승인을 위한 주주총회를 연다. 합병비율은 1 대 4.05. 합병신주는 내년 2월에 상장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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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